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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자금 고갈 우려가 높아지자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대상 증권에 기존 국채, 정부보증채는 물론 최근 추가한 은행채에 이어 일부 공기업 특수채까지 포함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RP 매입은 한은의 대표적인 시중 유동성 공급 방식 중 하나다.
23일 한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유동성 공급 채널을 확충하기 위해 현행 5개사인 RP 대상 비은행 기관을 통안증권 대상 증권사 및 국고채전문딜러(PD)로 선정된 증권사 등으로 확대하고, RP 대상 증권도 현행 △국채 △정부보증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은행채에서 추가로 일부 공기업 특수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RP 대상 공기업 특수채는 한국전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우량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이 거론되고 있으며, 조만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한은 대출담보증권도 은행채 및 일부 공기업 특수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은은 이와 함께 한국증권금융 등 5개 RP 대상 비은행 기관을 대상으로 24일부터 RP 매입을 실시하기로 했다.
한은이 이처럼 시중 유동성 확대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 한은 발권력을 동원해 매입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회사채는 예외다. 이미 2008년처럼 채권안정펀드와 증시안정펀드 등을 조성해 간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어서 직접적인 자금 수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금융과 실물이 모두 붕괴되는 악순환에 빠진 만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처럼 한은이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은 발권력이 무한 확장될 경우 불거질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시장과 정치권의 회사채 매입 요구는 한국은행법 테두리를 넘어선다. 한은법 75조와 76조에는 한은의 여신과 증권 매입 대상이 국고채와 정부보증채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회사채나 CP를 매입하거나 공개시장운영 대상 증권에 포함시키는 것은 68조에 막혀 있다. 금통위 재량에 따라 산금채, 은행채 등이 포함되고 있지만 회사채나 CP는 예외다. 별도 규정에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 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것'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보증채권처럼 유동성이 담보돼야 하고 손실이 나선 안 되기 때문에 신용위험이 있는 위험자산은 매입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79조에는 정부와 금융기관을 제외한 법인이나 개인과의 대출거래나 증권 매입 자체를 못하도록 민간과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처럼 정부 보증 없이는 회사채나 CP 직매입이 불가능하다는 게 한은 입장이다.
전직 금통위원은 "한은의 회사채·CP 매입은 전례가 없는 일로, 실제 지원하더라도 대상 기업을 선별하기 어렵다"며 "모럴해저드 우려도 있기 때문에 한은 발권력을 너무 쉽게 동원하면 부작용은 물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한은 발권력에 기댄 회사채 지원 방안은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2013년과 2016년 조선·해운·건설 등 취약 업종 구조조정 등 자금 경색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만큼 한 번 '둑'이 터지면 발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미국처럼 달러를 무한정 찍어 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개방도가 높은 국내 외환시장으로서는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부작용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미국 연준도 정부가 보증한 채권만을 인수했다.
하지만 시장의 위기감과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치는 2008년을 넘어선 상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유동성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멀쩡하던 회사도 도산할 수 있다"며 "은행 수준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은이 나서 회사채나 CP를 사주는 방식으로 막힌 유동성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요청도 거세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금융안정 태스크포스 단장은 "회사채나 CP 디폴트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기업어음매입기구(CPFF)와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성현 기자 / 송민근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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