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연초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움직임의 세 배를 추종하는 '3X 레버리지' 상장지수상품의 상장 폐지가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미국 시장에 상장된 상품이다. 운용이 어려울 정도로 상품 규모가 쪼그라든 데다, 원유 변동성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선물 거래를 통해 유가 움직임의 세 배를 맞추기 어려워진 점도 상장 폐지를 결정한 배경으로 꼽힌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벨로시티셰어즈 원유 3배 ETN'(VelocityShares 3x Long Crude Oil ETN)과 '프로셰어즈 원유 3배 ETF'(ProShares UltraPro 3X Crude Oil ETF)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전자는 현지시간으로 다음달 2일까지의 거래를 마지막으로 청산되며, 후자는 27일까지만 거래가 가능하다. 이때까지 상품을 처분하지 못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운용사가 정한 기준에 따라 순자산가치를 산정해 분배금을 지급한다. 이들 두 상품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순매수 규모는 올 들어 5433만달러(약 688억원)에 달해 상장 폐지에 따른 손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원유 움직임의 세 배를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인버스 상품, 위즈덤트리의 원유 3배 레버리지 상품 등이 상장 폐지를 앞두고 있다.
원유 3배 레버리지 상품은 WTI 일별 움직임의 세 배를 추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품이다. 안 그래도 높은 유가 변동성을 극대화시켜 소화한다. 국제유가가 하루에 10% 오르면 해당 상품 가격은 30% 오르고, 반대의 경우에는 30% 하락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국내에는 유가 움직임 두 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만 상장돼 있다.
각 상품을 운용하는 씨티그룹과 프로셰어즈는 상장 폐지를 결정한 배경을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각 운용사 홈페이지를 통해 '운용사의 선택'에 따라 청산한다고 명시했다. 약관에 따르면 각 상품은 순자산 가치가 전 거래일 대비 70~75%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상장 폐지 절차에 돌입한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25% 가까이 급락한 지난 9일과 18일에도 아슬아슬하게 이들 조건을 피했기 때문에 '자동 청산'은 아니다. 규정상 상품을 꼭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운용사가 상장 폐지를 결정한 까닭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운용이 어려울 정도로 작아진 상품 규모를 꼽는다. '벨로시티셰어즈 원유 3배 ETN'은 올 들어 98.1% 폭락했고, '프로셰어즈 원유 3배 ETF'는 97.6% 고꾸라졌다. WTI가 연초 60달러 선에서 20달러 선까지 바닥 없는 추락을 이어온 결과다. 각 상품은 현재 주당 0.5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김찬영 삼성자산운용 ETF 컨설팅팀 팀장은 "레버리지 상품은 선물 거래를 통해 특정 지수의 배수를 추종하는데, 큰 금액으로 이뤄지는 선물 거래 특성상 상품 규모가 작아지면 운용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 등락폭이 커지면서 선물 거래 포지션을 잡기 어려워진 점도 이들 운용사가 손을 드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8년 2월 변동성지수가 급등하면서 이를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미국 ETF가 상장 폐지된 경우를 제외하면 기초자산 급락으로 상장 폐지에 이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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