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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오늘의 경제소사] 美, 초음속 여객기 개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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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 B-747 대성공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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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속의 2.7배 속도에 승객 수 275명.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 개발하려던 초음속 여객기(SST)의 제원이다. 목표 성능은 탁월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콩코드 여객기(마하 2.04·탑승정원 92~128명), 소련의 Tu-144(마하 1.7·탑승정원 60~70명)보다 빠르고 컸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들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국운을 다해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1963년부터 1971년까지 누적 투자비만 8억6,300만달러. 요즘 가치로 55억달러에 이르는 개발비의 75%를 댔던 미국 정부는 1971년 3월24일 ‘연구비 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사업 의지가 강했으나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의 예산 삭감안을 피할 수 없었다. 전액 삭감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베트남 전쟁 비용과 달 탐사 계획(아폴로 프로젝트)을 유지하려 초음속 여객기 예산을 잘랐다. 둘째 이유는 환경 문제. 고고도 운항 시 오존층을 파괴하고 저고도 비행에서는 굉음으로 민원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꼬리를 물었다. 미 공군이 개발하던 B-70 발키리 초음속 전략폭격기(마하 3)의 크고 작은 사고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보잉사는 시제기 ‘보잉 2707’ 2대를 조립하던 상태에서 생산라인을 멈췄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제럴드 포드 의원이 20년간 일자리 15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며 8,533만달러의 예산을 되살렸으나 사업 자체를 접었다. 각국의 27개 항공사로부터 선주문 받았던 122대에 대한 착수금도 돌려줬다. 공화당은 ‘항공 산업의 일감이 날아가고 미래도 무너졌다’고 개탄했으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영국과 프랑스·소련의 초음속기는 오래 날지 못하고 채산성 악화로 날개를 접었다. 반면 미국과 보잉사는 대박을 쳤다.

여객용은 B-2707 초음속기, 화물용은 B-747로 양분하려던 판매전략을 수정한 보잉사에는 주문이 밀려왔다. 지난 2월 말 현재 시리즈 누적 생산량이 1,557대.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한국도 92대를 사들였다. 더욱이 B-747은 1965년 미 공군의 차기 수송기(C-X) 사업에서 록히드사의 C-5 갤럭시에 밀렸던 기종이다. 보잉사는 느려도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워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초음속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1960년대의 통념과 달리 느림의 미학이 승리한 셈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극초음속기 개발론이 죽지 않는 다년생 풀처럼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인간은 속도를 잡는 꿈을 꾸는 존재일까. 아니면 망각의 동물일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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