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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곽인찬 칼럼] 코로나 시련을 낭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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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언젠가 사라져
바이오 일등국 기틀 다지면
그나마 고통이 덜 억울할 것


파이낸셜뉴스

전염병의 출현은 신화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트로이전쟁 때 아폴론 신은 트로이 편을 들었다. 그는 그리스군에 전염병을 퍼뜨렸다. 아폴론은 의술과 역병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군이 한때 곤욕을 치렀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몽골군이 퍼뜨렸다는 얘기가 있다. 세계 최강 몽골군은 크림반도에 있는 카파를 공략했으나 실패했다. 부대 안에 역병이 돌았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때 부아가 치민 몽골군이 철수하면서 시체를 투석기에 달아 카파 성안으로 던져넣었다는 것이다.

질병은 종종 역사를 바꾼다. 16세기 천연두가 근대사를 바꿨다. 스페인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는 단 600명의 병사를 앞세워 멕시코 아스테카 왕국을 점령했다. 애써 총을 쏠 필요도 없었다. 천연두가 원주민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잉카제국도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원주민들은 천연두, 독감, 디프테리아, 티푸스의 희생제물이 됐다. "프란체스코 피사로는 1532년 167명의 보병과 67명의 기병만으로 감염성 질환과 내전으로 이미 초토화된 잉카제국을 단숨에 제압했다"(로날트 게르슈테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인간은 병균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19세기 콜레라가 유럽을 덮쳤다. 프랑스에선 1만8000명이 희생됐다. 이때 프랑스 부유층은 플란넬로 짠 옷이 콜레라를 막아줄 거라고 믿고 온 몸을 플란넬로 감쌌다. 영국의 한 돌팔이 의사는 기름칠한 코르크로 항문을 막으면 콜레라로 인한 설사 배설물을 막을 수 있다고 떠들었다. 하긴 21세기 한국엔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리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종종 경제도 바꾼다. 14세기 페스트가 물러간 뒤 유럽 인구는 30%가량 줄었다. 독일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게르슈테는 "흑사병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불러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고 말한다. 노동력 부족은 임금 상승을 불렀다. 농민은 할당받는 경작지가 넓어졌다. 식량은 예전보다 넉넉해졌다. 나아가 기술혁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한국 경제에도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다. 기업은 초대형 재택근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예전엔 엄두조차 못 내던 일을 바이러스가 한방에 해결한 셈이다.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한국 바이오의 위상도 한껏 높아졌다. 진단시약(키트)은 세계 최고다. 한발 더 나아가 치료제와 예방백신도 한국이 일등으로 올라서면 좋겠다. 제약은 반도체보다 더 큰 시장이다. 바이오 혁신기업이 앞장서고 정부가 뒤에서 밀면 못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는 유럽 최일선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로마 교황청에 사는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 어려운 나날을 낭비하자 말자"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를 통해 인류는 악수와 포옹, 입맞춤과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국내 수도원의 한 수도자는 "수도원에는 정적만이 흐른다. 하지만 그 덕에 수행자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게 되니 생각지 못한 이득이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 코로나는 물러갈 것이다. 한국 경제가 이 시련을 낭비하지 말고 생각지 못한 이득이라도 얻으면 좋겠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훗날 부디 경제만이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숨겨진 축복이길 바란다. 그래야 난데없이 겪는 이 시련이 덜 억울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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