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지난 22일 리시차 공연을 앞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가벼운 흥분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나라 클래식 문화의 중심인 예당 콘서트홀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줄줄이 취소돼 문 닫은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관객을 받아들인 날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달여 동안 문 닫았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2일 열린 연주회에서 ‘피아노 검투사’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가 마스크 차림으로 연주하고 있다. 기획사 오푸스 제공 |
실황 연주에 목말랐던 마스크 차림의 클래식 애호가로 콘서트홀 1층 기준 삼 분의 일쯤 채워진 객석은 리시차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탄성을 내야 했다. 리시차 역시 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사할 때만 살짝 마스크를 내린 리시차는 다시 마스크를 고쳐 쓰고 곧장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자까지 꼭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었으나 “음악을 나누기 위해서 모였지만 불편하더라도 최소한의 지킬 걸 지켜서 서로를 도와주자”는 뜻으로 리시차가 결정한 일이었다고 한다.
3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1년 후에 첫 독주회를 가지며 타고난 재능을 보인 리시차의 이날 연주는 ‘검투사’라는 별칭에 걸맞았다. ‘격정과 환희’라는 주제 하에 고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채운 프로그램으로써 1부에선 17번 ‘템페스트’와 23번 ‘열정’으로 객석을 고양했다. 폭포처럼 건반을 훑어내리는 ‘서커스적 타건’은 여전했다. 아울러 강력한 타건에서 나오는 잔향이 깊은 심상을 만들어냈다.
무대의 이변은 2부 프로그램인 29번 ‘함머클라비어’ 연주에서 벌어졌다. 가장 위대하면서 난해한 피아노곡으로 ‘끝없는 탐구를 요구한다’는 이 곡을 연주하던 리시차는 총 4악장 중 3악장을 마친 후 피아노에 엎드려 오열하다 끝내 무대 바깥으로 나가 한동안 돌아오지 못한 채 감정을 식혀야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리시차는 영어로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 생각 때문에 그랬다”며 사과한 후 4악장 연주 없이 무려 50여분 이어진 앙코르 연주에 돌입했다. 14번 ‘월광’에서 시작해 쇼팽 ‘녹턴’ 20번,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2번, 라벨 ‘밤의 가스파르’로 이어져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op 23 no.5)’로 총 5곡을 들려줬다. 공연 후엔 “프로 연주자로서 그것도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의 핵심인 함머클라비어 4악장을 생략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공연 현장 참석자들은 장시간 마스크를 쓰고 분투한 피아노 검투사에게 큰 갈채를 보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달여 동안 문 닫았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2일 열린 연주회에서 ‘피아노 검투사’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가 마스크 차림으로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기획사 오푸스 제공 |
공연 후 다시 거주지 러시아 모스크바로 돌아가 14일간 자택격리를 해야 할 상황인 리시차는 기획사를 통해 이런 메시지로 관객에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갑자기 86세이신 고령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사람들이 계속 코로나19 때문에 안 좋은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연주회에 와주신 한국 국민도 다 마스크를 낀 채로 있는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곡도 굉장히 공감을 일으키는 곡이라 감정에 복받쳐 끝까지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빛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감싸주는 것처럼 사람들을 감싸주고 싶어서 월광을 연주했습니다. 오늘 저의 연주가 많은 사람에게 달빛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미안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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