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 대비 선제적 유동성 확보 목적
삼성전자 등 핵심 자회사 지분 확대 가능성 제기
[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로부터 받을 공사대금(외상 매출채권)을 유동화해 4560억원을 조달했다. 공사 기성고에 따라 결제받게 되는 공사대금을 미리 현금화한 것으로, 유동성 확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최근 BNK투자증권 주관으로 4560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유동화증권의 기초자산은 삼성전자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유한 공사대금 채권이다. 삼성전자로부터 받을 공사대금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가 공사대금을 결제하면 투자자들에게 유동화증권 원리금을 우선 상환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로부터 수조 원의 수주를 받아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 전략으로 설비투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삼성물산의 수주액도 급증했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전자 평택 메모리반도체 2공장과, 화성 반도체 라인, 중국 시안 메모리반도체 2공장 등의 건설을 진행 중이다. 관련 업계는 지난해 삼성물산의 계열사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에서 받은 수주 등으로 발생한 매출은 3조2200억원 규모다. 2018년 같은 기간 삼성전자향(向) 매출 2조1200억원 대비 1조원 이상 증가했다. 보유 채권 잔액은 1조2000억원으로, 채무액 2400억원을 제한 순채권 규모는 9600억원 규모로 파악된다. 지난해 4분기에는 삼성전자로부터 1조362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IB업계는 삼성물산의 공사대금 유동화 배경을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용으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을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주관사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에 대비해 낮은 금리로 미리 현금을 확보해 놓으려고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물산은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조달해 왔으나, 2017년 이후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있다. 신용등급은 AA+로 우량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편법승계 의혹 수사가 길어지면서 공모 시장에 나서지 못했다. 공모채 대신에 주로 국내외 은행의 장·단기 대출에 의존해 자금을 확보해 왔다.
일각에서는 최대한 유동성을 확보한 뒤 핵심 자회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 사태로 계열사 주가가 급락해 삼성물산 입장에서 계열 지배력 확대의 적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5.0%), 삼성중공업(0.1%), 삼성엔지니어링(7.0%), 삼성SDS(17.1%) 등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1월 주당 6만2800원을 고점으로 이날 4만2300원까지 추락했다. 시가총액은 37조원을 넘었다가 255조원으로 줄어들었다. 주당 20만원을 넘었던 삼성SDS도 이날 13만7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한편 삼성물산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0조7620억원, 영업이익 8670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2018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건설부문 일회성 비용과 원자재 가격 약세 등으로 21.5% 감소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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