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한은법상 신용위험 증권은 매입 제한"…금융위기땐 공개시장조작으로 지원
전문가 "정부 보증을 전제로 한은이 자금 지원 늘리는 방안은 검토 가능"
한국은행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정수연 기자 = 정부가 이번주 대통령 주재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은행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한은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한은은 "회사채나 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은 현행 한국은행법상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다.
앞서 정부는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계획을 담은 보도자료에서 "자체 재원과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50조원+α 규모를 조성하되, 한은이 절반 수준에 대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은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참여 금융기관을 통해 필요한 유동성을 적극 공급할 계획"이라며 "정확한 지원 규모와 지원 방식 등은 추후 개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확정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의 유동성 지원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국고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출자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앞서 한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공개시장조작인 RP 매입을 통해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출자한 금융기관에 2조1천억원을 공급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은은 시중은행의 자본건전성 개선을 목적으로 한 은행자본확충펀드에도 3조3천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다만 이때는 RP 매입이 아니라 대출 방식이 동원됐다. 한은이 산업은행에 저리로 대출하고, 산은이 이 자금을 특수목적기구(SPC)인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다시 대출하는 방식이었다.
민생금융안정 패키지나 추후 검토될 추가 대책에선 과거 금융위기 때 사용됐던 이런 방안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한은이 역할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후 회견에서 "한은법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필요한 대응을 하고 있고 또 대응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선 한은이 과거 역할을 넘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현재 거론 중인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10조원)로는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 분위기를 녹이는 게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업어음(CP) 매입기구'(CPFF)를 설치해 현금 확보가 다급한 기업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한은 역할론'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여권 일각에서도 회사채 및 CP 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이 기존 틀을 깨고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직접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매입해 신용 경색 기미를 보이는 이들 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해달라는 기대다,
하지만 한은은 유동성 지원에 적극 동참하되 직접 신용위험을 부담하는 방안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채나 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은 현행 한은법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은법(제68조)은 공개시장조작 때 매매할 수 있는 증권으로 국채, 정부보증채, 그 밖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유가증권 등 3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또 이들 유가증권은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한정한다'고 규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발행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다'는 표현은 유통시장과 발행시장에서 문제가 없는, 즉 신용위험이 없는 자산이 공개시장조작 대상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부 보증 등을 통해 신용위험을 제거하지 않고는 채권시장안정편드 재원 용도로 금융기관이나 SPC에 직접 대출하는 방안도 채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은 이미 밝힌 바처럼 필요한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라면서도 "다만, 법의 테두리나 중앙은행의 기본원칙 범위를 벗어나는 방식의 지원은 곤란하다. 미국의 CPFF도 연준이 신용위험을 지지 않는 방식으로 고안됐다"고 말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를 늘리려면 결국 금융기관의 출자 부담이 늘다 보니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은은 한은법상 신용위험을 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회사채·CP 시장이 경색되는 경우 정부 보증을 전제로 한은이 자금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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