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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공약, 이것만은] 'n번방' 강력처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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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허미담 기자]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여성과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21대 총선공약으로 디지털성범죄 처벌 관련 과제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거나, 정작 처벌에 필요한 내용은 빠져 있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여야는 모두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사’가 검거되기 전인 지난 2월 “n번방 사건은 성착취, 인권유린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독버섯처럼 퍼져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임윤선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상근대변인은 “전대미문의 성착취 영상 배포 사건에 가담한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미래통합당이 앞장설 테니 여당도 뒷짐을 풀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공약 발표 때 불법촬영물의 제작자, 유포자의 강력 처벌은 물론이며 소비자까지 벌금형으로 처벌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가해자들은 처음엔 소비자 그 다음엔 유포자, 제작자로 변모한다. 소비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각 당은 21대 총선공약에 디지털성범죄 처벌 강화를 과제로 내세웠다. 공통적으로 성착취 영상물에 관한 처벌을 확대, 강화하고 변형카메라에 대한 관리를 시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성착취 영상물의 구매자, 소지자에 대한 처벌 강화, 사진 영상 합성피해(딥페이크) 처벌규정 마련, 변형카메라 이력정보시스템 구축 등의 대책을 냈다. 미래통합당은 촬영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영상을 이용한 협박을 성폭력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협박 피해자도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젠더폭력 3대 공약 중 첫 번째로 n번방 대응을 내걸었다. 공급망 단속 처벌 강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의무부과, 국제수사 공조 강화 등 유통구조 차단에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국민의당도 불법촬영물 신속삭제 및 차단,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설치 등을 제시했다.

알맹이 빠지고 이해도 부족…실현 가능성 비판도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작 공약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국회의 '의지부족'이다. 기존에 발의된 디지털성범죄, 아동성범죄 처벌 강화 법안들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디지털성범죄 처벌 강화,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의무 위반 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1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불법촬영 피해자가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피해사실을 신고하면 즉시 삭제해야하고 하지 않으면 제재하는 유승희 민주당 의원 발의 법안, 통신매체 음란 행위, 불법 촬영 상습범에 대한 가중 처벌을 위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 등은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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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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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실효성 부족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벌어질 수 있는 입법공백을 지적했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유포하지 않았더라도 시청하거나 소지하는 것 또한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소지죄'를 신설하고 현행법상 성폭력처벌법에 빠져있는 유포협박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의 변호사도 "여론에 맞춰 졸속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며 "법 적용에 대한 기준, 공백을 메꿀 구체적 내용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의 사건 이해도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국회청원이 논의된 법사위 제1소위에서는 법무부 관계자들과 법사위원들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드냐"라고 했다. 인공지능(AI) 등으로 지인의 얼굴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드는 딥페이크를 두고 김인겸 법원행정처차장은 "저도 잘 모르는데 이것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하여튼 맥락은 (같다)"고 언급했다.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한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긴다는 것까지 갈 거냐",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고 발언을 해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국회는 텔레그램 성범죄 처벌 청원에 대한 답으로 딥페이크 처벌 대책을 통과시켰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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