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명성 어디가고
영향력 하락에 신뢰 위기도
4대 은행 PB 1월 기준 575명
PB 기피 현상에 해마다 감소
"선진국형 업무 시스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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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4대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원금손실을 낸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논란의 주범으로 몰리며 PB의 위상이 추락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향력이 급전직하 한 것뿐 아니라 신뢰의 위기마저 겪는 실정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ㆍKB국민ㆍ하나ㆍ우리은행의 PB 수는 지난 1월 말 기준 575명으로 파악됐다. 2017년 591명, 2018년 583명, 지난해 579명으로 PB 수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DLF, 라임 사태 등을 거치며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 PB 직군에 대한 기피 현상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일부 은행에선 젊은 직원들이 PB가 되길 꺼리는 풍토가 만연하는 모양새다.
주요 은행 PB의 평균 고객 수는 50여명.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1500억~2000억원가량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전같은 명성 마케팅은 자제하고, 상품 포트폴리오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상태다. 한 시중은행 PB는 “나이든 고객이나 투자에 익숙지 않은 고객엔 1시간 이상 충분히 설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품 이해가 덜 된 고객은 아예 가입을 받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DLF 사태 이후 생긴 풍경이다. 지난해 10월 한 시민단체는 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원금 손실을 초래한 시중은행의 은행장들과 함께 은행 상품을 판매한 PB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태를 거치며 은행권에선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PB 기피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PB가 되려면 까다로운 자격 조건을 모두 갖춰야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는 젊은 직원들이 PB가 되길 원했다”며 “지금은 젊은 직원들조차 PB를 꺼리고 외환부서나 디지털, 글로벌 사업 쪽 부서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PB는 은행의 이익 기여도에서 상당히 높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최근 저금리로 이자 장사인 본업보다 비이자수익원을 넓혀야 하는 은행들은 수익성 면에서 자산관리(WM)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잇따른 금융사고로 PB직군의 매력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1세대 스타 PB’로 활약했던 한 시중은행 A 지점장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뿐 아니라 연예인, 스포츠스타, 강남의 현금부자들을 고객으로 두면서 최고의 호시절을 보냈다”면서 “요즘 후배 PB들은 대외 활동을 하는데 주저함이 있고, 은행 내에서도 그런 활동을 권장하지 않아 많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강남의 한 시중은행에서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B씨도 “PB를 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고, 여러 국내외적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펀드가 손실이 났다거나 해서 고객의 항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면서 “요즘 같이 어수선한 분위기에는 PB를 하기 정말 어렵다. 안 좋은 뉴스가 나면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친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온 PB 업무 프로세스가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수수료만 따 먹으려는 구시대적 발상은 접고, 고객 수익률 향상을 위해 PB 역량을 극대화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A지점장은 “은행과 PB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고객에게 진정성을 보인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B지점장도 “실적에만 매몰되지 않고 최대한 영업전략을 보수적으로 짜야 한다”고 했다.
한편 5대 은행으로 불리는 NH농협은행의 경우 아예 PB 직군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WM센터에서 고액 자산가를 유치해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 부문을 키우겠다는 은행의 영업 전략과 배치된다. 지난해 창립 58년 만에 처음으로 WM센터를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했지만 PB 센터없는 WM서비스로 뒷말이 무성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 중 WM 부문이 가장 약한 한계를 안고 있는 농협으로서는 PB센터를 건립하고 PB를 영입하기에는 물리적 비용 지출이 높아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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