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진보 진영 비례정당에 참여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군소 야당들이 연합해 성사시킨 선거제 개혁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앞두고 사실상 와해 위기에 직면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비례의석 확보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카드를 꺼내면서 선거제 개혁의 핵심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가 흔들렸고 여야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주도했던 민주당이 진보 진영 위성정당에 동참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 안철수계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국민의당은 지역구 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비례전문정당'을 선언하고, 통합당과 사실상 야권 선거연대에 나섰다. 선거제·검찰개혁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이뤄낸 4+1 연합이 결국 각자 이해관계 때문에 갈려서 개혁 취지를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8일 오후 민주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진보·개혁 진영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정치개혁연합' 측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창당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참여'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적용되는 이번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등장으로 통합당에 원내 1당 지위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원내 1당 자리를 내주게 되면 의석수에서 밀리는 것은 물론 국회의장,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도 내주는 불리한 상황을 맞게 된다.
특히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얻을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이 7석가량인데 그 이상 욕심내지 않고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게 민주당 후보를 후순위에 배치하자는 것이 당내 다수 의견"이라면서 "참여하기로 결심한다면 민주당이 독자적인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같은 취지로 총선 전략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참여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민주연구원은 지난달 24일 '21대 총선 비례정당 관련 상황 전망·민주당 대응전략 제언'이라는 대외비 보고서를 작성해 지도부에 보고했다. 민주당·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으면 각각 비례의석 6~7석, 9석을 확보하고, 미래한국당이 최소 25석을 가져가 원내 1당이 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는 "통합당은 지역 선거구에서 지고도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장회사의 우회상장 편법이익으로 원내 1당이 될 게 뻔하다. 촛불혁명 세력의 비례후보 단일화를 통해 탄핵 세력이 1당이 돼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비례연합정당에서 민주당이 스스로 순번을 뒤로 배치하는 '배수의 진' 방안도 제시했다.
정의당은 비례연합정당 참여는 절대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정의당은 이날 오후 8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어떤 경우라도 '비례대표용 선거연합정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비례대표 경선을 통해 순번 배치까지 마무리한 정의당은 이날 전국위에 앞서 비례대표 후보 선출 보고대회를 열고 독자적으로 비례 선거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우리 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하는 그 어떤 비례 정당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범진보 개혁 세력의 승리를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적을 이기고자 적을 닮아가는 '내로남불' 정치"라면서 "비례연합정당과 같은 공학적인 발상은 자칫 범진보 개혁 세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정의당은 민주당이 비례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전략적 분할투표' 등 선거연대 방안에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민생당은 공식적으론 '참여 불가' 방침이다. 하지만 박지원·천정배 의원 등 당내 중량급 인사들이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태도 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 민주당이 양보하는 방안을 내놓으면 기류가 바뀔 수 있다. 비례연합정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개혁연합은 일단 다음주 중 시도당 창당대회를 모두 마칠 예정이다.
선제적인 비례 위성정당 카드로 4+1 분열에 단초를 제공한 통합당은 민주당이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미래한국당을 만들 때 '가짜 꼼수 위성정당'이라고 온갖 욕을 다 하더니 이제 와서 연합정당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적반하장 논리"라며 "정당 이름만 민주당일 뿐 반민주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례 위성정당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거 선거법 개정에 대한 사죄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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