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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해방 이후 멸실됐던 대한제국 국새 '대군주보'·조선시대 '효종어보'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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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왼쪽부터 김형근 미주현대불교발행인과 기증자 이대수 씨 아들 이성주씨, 정재숙 문화재청장, 경북 구미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전 사무처장 신영근씨가 환수된 '대군주보'와 '효종어보'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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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해방 이후 한국 전쟁시기 사이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대한제국의 국새 '대군주보'와 조선시대의 '효종어보'가 국가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19일 문화재청은 조선의 자주국가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1882년(고종 19년)에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년)에 제작한 '효종어보'를 지난 해 12월 재미교포 이대수(84)씨로부터 기증 받아 국내로 무사히 인도했다고 밝히고 환수한 이 두 유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대수씨는 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 후 줄곧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경매 등을 통해 문화재들을 매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이 두 유물들을 매입했고 최근 이 국새와 어보가 대한민국 정부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고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김형근(64)씨와 경북 구미의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전 사무처장 신영근(71)씨가 기증자와 문화재청 사이에서 국새와 어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증의 방법과 형식, 시기 등을 조율하는 등 조력자 역할을 원만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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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주보(왼쪽)와 효종어보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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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국권을 상징하며 외교문서나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하는 도장인 대군주보는 고종이 사용한 것으로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따르면 외교관련 업무를 위해 고종의 명에 따라 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대군주보는 높이 7.9cm, 길이 12.7cm 크기로 은색의 거북이 모양 손잡이와 인판(도장 몸체)으로 구성돼 있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과 청에서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를 꿈꾸던 고종의 명으로 '대(大)조선국'의 '대군주(大君主)'라는 글씨를 새긴 '대군주보'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게 ?다. 이태진 전 국사편잔위원회 위원장은 "고종이 19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등 당시 조선의 정세 변화에 발맞춰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의 전환과 동시에 위권을 확립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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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주보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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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주보의 공식적인 사용 시기는 1882년 제작 이후 1897년까지로 파악됐다. 실제로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을 임명하는 1883년 문서에 실제 날인된 예가 확인됐다. 또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새롭게 제정된 공문서 제도를 바탕으로 대군주(국왕)의 명의로 반포되는 법률, 칙령, 조칙과 관료의 임명문서 등에 사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으로 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죽은 후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해 종묘 등에서 보관하는 어보 중 하나인 효종어보는 높이 8.4cm, 길이 12.6cm 크기로 역시 거북이 모양 손잡이에 금색을 띤 형태로 영조 16년(1740년)에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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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어보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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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어보는 효종 승하 직후인 1659년(현종 즉위년)에 시호를 올렸고, 1740년(영조 16년)과 1900년(광무 4년)에 존호를 올렸으며 이 때마다 제작돼 왔다. 현재까지 효종어보 총 세 점 중 1900년에 제작한 어보만 전해오고 있었는데 이번에 1740년에 제작된 어보를 환수함에 따라 이제 1659년에 제작된 어보를 제외하고는 효종과 관련된 어보 2점은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에 무사히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대한제국기를 포함해 조선 시대에 제작된 국새와 어보 412점 중 이번에 돌아온 두 점을 제외하고 아직 73점은 행방불명 상태"라며 "국새·어보는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으로 소지 자체가 불법인 유물로 그 동안 국새나 어보의 환수는 주로 압수나 수사와 같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이번 환수는 제3자의 도움과 소유자 스스로의 결심으로 이루어 낸 기증이라는 형식의 우호적 환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기증자 이대수씨의 아들 이성주씨는 "역사적 귀중품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가족 모두가 따랐다"며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많은 국새와 어보가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번에 돌아온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를 오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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