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 장렬한 전사는 없다. 죽는 건 죽는 것이다.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청년들이 이 말을 꼭 다시 새겼으면 한다. 청년에게 신선함은 특권이다. ‘깨는’ 말, ‘깜짝’ 행동을 해도 더 관대히 보인다. 눈인사 한 번 해도(요즘 악수는 못 한다) ‘이렇게 젊은 분이?’란 생각에 한 번 더 돌아본다. 최악 국회로 꼽히는 20대 총선 당선자의 평균 나이는 55.5세. 역대 국회 중 최고령이다. 어찌 보면 청년이란 게 말 그대로 벼슬이 됐다.
‘꾼’들에게 청년들은 좋은 제물이다. 젊고 패기 있다. 호감도도 높고 유능하다. 단 하나, 정치에 비교적 미숙하다. 어쭙잖은 명분으로 유혹하기 좋은 조건이다. ‘꾼’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누구는 자연스레 고향 출마, 누구는 당연한 듯 알박기를 준비한다. 가뜩이나 없는 청년에겐 험지란 말이 따라붙는 게 어색하지 않다. 기껏 지역구를 다진 몇몇 청년을 향해선 대놓고 험지 차출론이 돌고 있다. ‘죽어도 남는 장사’ 등 그럴 듯한 포장지만 쥐여주고서다.
청년이여, 이번에는 먼저 희생하지 말았으면 한다. 속는 셈 치고라도 끄덕이던 그 현혹에 더욱 버텼으면 한다. 희생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감언이설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전쟁터에서나 장렬한 전사가 맞는 말이다. 훈장, 국립묘지 안장 등 당연한, 극진한 예우가 따라온다. 정치판에선 험지에서 진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말만 들어도 다행이다. 그뿐이 아니다. 청년들은 선거에서 지는 즉시 ‘그냥 사람’이 된다. 가장 큰 무기인 ‘청년 신인’이란 말을 앞세울 수 없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몇몇 의원은 불과 얼마 전까지 서울 종로구에 ‘제2의 손수조’를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헛웃음이 났다.
통합당은 2012년 19대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 27세 신인 손수조 후보를 내보냈다. 당시 야권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의 힘을 빼자는 차원에서였다. 손 후보는 낙선했고, 문 후보는 대권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당 일각에선 선거 직후 “그래도 문 후보의 주목도를 낮췄다”고 자평했다. 그런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일을 보면 그런 재미도 크게 못 봤다는 게 입증됐다. 손 후보는 지금 어디 있나. 어디서든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정치권에서 크게 언급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손 후보도 사명감을 안고 험지로 갔겠지만 결과적으로 청년 한 명이 안타까운 희생을 한 일이 됐다.
누군가는 청년에게 험지 출마 기회를 주는 게 혜택이라고 한다. 당선되면 곧장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청년들은 그래도 ‘애쓰면 이길 만한’ 지역구를 받는 등 정치를 차곡차곡 배울 기회를 더 원하지 않을까. ‘나도 험지로 가고 싶지만 청년에게 양보하겠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지금은 120세 시대가 아닌가. 당신도 청년이니, 험지는 너나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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