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업 신고 가능 요건에 ‘자가 소유’ 명시
자본 부족한 청년층 귀촌에는 걸림돌
안전 요건 강화와 직접 관련도 없어 ‘행정편의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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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 게스트하우스 대표인 A씨는 1년6개월간 운영해온 사업을 접을까 고민 중이다. 깔끔한 도미토리(기숙사)형 방에 저렴한 가격, 정갈한 조식 등으로 입소문나며 자리를 잡았지만 오는 5월부터 자칫 불법사업자가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 농어촌 민박업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농어촌 정비법 일부 개정안이 문제의 단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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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정비법 개정안은 크게 ▷농어촌 용수 공급 부족 해결을 위한 실태 조사와 지원 근거 마련 ▷빈집 정비 체계화를 통한 농촌 주거환경 개선 작업 ▷농어촌민박 신고 요건 강화 등으로 내용이 보완됐다. 이 중 농어촌 민박 신고 요건 강화는 지난 2018년 강릉 펜션 유독가스 질식 사고, 지난달 동해 펜션 가스 폭발 사고 등 숙박업소에서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안전점검 강화와 직접 관련이 없는 규정이 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의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농어촌 민박업 사업자의 신고요건을 명시한 신설 조항인 제86조 2항이다. 86조 2항 3호는 ‘농어촌, 혹은 준농어촌 지역 관할 시·군·구에 6개월 이상 계속 거주하고 있을 것’, 4호는 ‘직접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6개월 이상 거주와 주택 소유 규정은 기존 농어촌 거주민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지만, 자본이 부족한 청년층에는 귀농·귀촌의 진입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임대로도 농어촌민박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대로 주택 소유를 기본으로 하려면 자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제86조 3항에는 예외조항을 뒀다. 기존에 ‘관할 시·군·구에 3년 이상 계속 거주했고, 임차해서 2년 이상 계속 농어촌 민박을 운영한 자’라면 자가 소유가 아니어도 민박업을 할 수 있게 했다. 향후 3년 이상 거주와 2년 이상 농어촌 민박을 운영하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예외로 임대 기반 사업이 허용됐다.
그러나 당장 수개월 사이에도 업황이 크게 흔들리는 소규모 민박업자들에게 2년 이상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 자체가 부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게스트하우스 사업자는 “기숙사형 방 2~3개와 주방 정도로 간소하게 운영하는 사업체는 2년을 넘기기 어렵다”며 “숙박업은 경기, 소비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터라 코로나19 같은 예기치 못한 악재를 만나면 1년 반 만에도 존폐기로에 설 정도”라고 전했다.
여기에 ‘부모찬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요건을 완화하는 조항도 있어 불공평한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농어촌 민박사업에 이용되고 있는 주택을 상속받은 자’는 6개월 이상 계속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해도 민박업을 할 수 있게 했다. 혈연 등의 기반이 없는 곳이라도 자유롭게 귀농, 귀촌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청년 유입이 활발해질 텐데 민박업에서도 부모찬스를 열어놨다는 것이다.
해당 개정법은 지난 11일 공포돼 6개월이 지난 오는 8월 12일부터 시행된다. 단, 민박업 요건을 규정한 제86조 제2항 4호(자가 소유)는 3개월 후인 오는 5월 12일부터 적용된다. 기존에 임대로 민박업을 해온 사업자들은 3개월 안에 주택을 구매할 것인지, 2년 이상 운영이란 의무 조항을 받아들일 것인지 정해야 한다.
민박업 허가 요건을 까다롭게 한 배경에는 숙박업소 안전사고를 예방이란 취지가 있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안전 사고예방과 관련이 없는 행정 편의적인 조항이라 입을 모았다.
A씨는 “민박은 자가가 아니어도 기본 안전시설 강화, 점검 체계화를 통해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자가요건을 걸어야 안전이 강화될 것이란 발상은 행정편의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강릉 펜션 유독가스 질식 사고는 일산화탄소 감지기 등 안전 시설이 미비됐고, 관련 점검체계도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지난달 동해 펜션 가스 폭발 사고는 아예 해당 펜션이 무허가 시설이어서 소방 점검을 받지도 않았다.
한편, 농어촌 민박업 허가 요건으로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항은 개정법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설된 제86조 2항 중 3호는 ‘신고자가 거주하는 단독 주택’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민박업 허가가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이는 빈 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용으로 활용하려는 스타트업 다자요(본지 1월 15일자 참조)에 설 자리를 주지 않는 조항이다.
농어촌의 빈 집을 리모델링해 10년여간 숙박용으로 활용, 인구 공동화 현상으로 고민하는 농어촌을 힐링 관광지로 되살린다는 다자요의 사업 모델은 지난 14일 규제샌드박스에서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정부는 신산업 출연 지원 측면에서 다자요 사례를 검토하고 있지만, 개정법에서는 오히려 민박업에 집주인 거주 요건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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