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조 못갚아…IMF와 협상 중인 아르헨
IMF, 아르헨 탕감 요구에 "그럴 일 없다"
협상 타결 못하면 9번째 디폴트 가능성
돈 찍어서 나눠주는 '페론주의' 포퓰리즘
"아르헨, 투자 주도 성장 계획 정립해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사진=신화/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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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IMF 단골손님’ 아르헨티나가 또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440억달러(약 52조원)를 갚지 못해 IMF와 채무 협상 중인데, 양측의 간극이 큰 탓이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아르헨티나는 일부 채무의 탕감을 요구했고 IMF는 이를 거부했다.
한때 ‘남미의 진주’로 불렸던 아르헨티나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 국가로 전락한 것은 그 자체가 미스터리다. 학계에서는 ‘아르헨티나 병(病)’으로 불리는 포퓰리즘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화폐를 찍어내는데 익숙하다 보니 경제가 자생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IMF 총재 “아르헨, 부채 탕감 없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와 채무재조정(debt-restructuring) 협상과 관련해 “‘헤어컷(일부 채무 삭감)’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헤어컷은 빚의 일부를 일정 비율로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8월 1000억달러(약 118조 9000억원)의 채무 상환을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440억달러가 IMF에서 빌린 돈이다. 경제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는 2018년 당시 IMF와 사상 최대인 총 570억달러(약 67조 80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 협약을 맺었으며, 그 가운데 440억달러를 빌려다 썼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리자 최대 채권자인 IMF는 부랴부랴 채무재조정 협상에 나섰다. 채무재조정은 채무자의 변제 능력이 부족할 경우 채권자와 채무자 간 합의 등을 통해 빚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채무 탕감, 상환 유예 등의 방식이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헤어컷 불가 선언은 아르헨티나의 채무 탕감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마르틴 구스만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그동안 IMF가 요구한 재정 긴축보다 채무 탕감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경기가 침체에 빠졌을 때 재정 긴축보다 더한 최악의 선택지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헤어컷을 통해 일단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뒤 빚을 갚겠다는 게 아르헨티나 정부의 논리다. 재정이든 통화든 돈은 더 풀테니 빚은 줄여달라는 것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탓에) 채무 부담을 신중하게 봐야 할 필요성은 이해한다”면서도 “그것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일이지 IMF의 일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IMF와 아르헨티나 정부 간 협상은 19일까지다. 앞으로 하루이틀사이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국가부도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1955년 이후 8차례 디폴트를 선언한 전력(前歷)이 있다.
◇“투자 주도 성장 선순환 구조 필요”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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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못 갚는다는 건 경제가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투자, 생산, 소비 같은 경제활동이 마비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IMF에 따르면 올해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51.0%다. 지난해 수준(53.8%)의 물가 폭등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아르헨티나는 2014년 이후 매해 38.4%→24.0%→42.4%→24.8%→47.6%→53.8%의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버는 돈(세금)은 줄고 빈곤층 증가로 돈 쓸 데는 늘어난 아르헨티나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돈을 찍어내면서 화폐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이로 인해 금융과 실물이 마비 직전으로 몰렸다.
통상 주요국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가 2.0%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르헨티나의 경제·통화정책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보다 물가 관리가 안 되는 나라는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남수단, 수단 정도다. IMF는 올해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은 -1.3%로 예상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이 수십년간 이어진 고질병이라는 점이다. 그 원조는 1946년 집권한 후안 페론 대통령이다. 산업 국유화, 무상복지 확대 등을 내세운 ‘페론주의’다. 비옥한 초원 팜파스를 기반으로 한 농축산업을 통해 한때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혔던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몰락하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칼럼을 통해 “경제 회생 전략이 없다면 이번 아르헨티나의 채무재조정 협상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아르헨티나 정부는 (무차별적인 돈 풀기를 멈추고) 산업 투자 주도 성장의 선순환 계획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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