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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르포]"피자 상자 산다는 손님도"…인증샷·먹방 성지 된 '기생충'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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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재료 소진"…2배 매출 오른 '기생충' 피자집

"촬영 과정 질서 정연"…사장님들이 전한 봉준호 미담

서울시 "명소표지판·포토존 설치…관광안내사 검토"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프로듀서입니다. 영화 ‘기생충’을 두 번이나 본 뒤 ‘피자시대’를 먹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봉 감독님처럼 되길 갈망합니다.”(일본인 카사마 노부타카 씨)

지난 13일 오후 2시 방문한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가게에 비치된 스케치북 방명록에는 일본인 노부타카 씨의 글과 함께 수많은 외신 기자들과 외국인, 국내 관광객들이 다녀간 흔적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이 가게 엄홍기 사장은 가게 앞에 늘어선 대기인원, 밀린 배달 문의에 숨 돌릴 틈도 없이 피자 도우를 만들어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전화벨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지만 받을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스카이피자’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걸은 뒤로도 가파른 언덕배기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구불구불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외진 곳에 위치한 피자 가게다. 4인용 테이블 두 개, 2인용 테이블 두 개가 전부인 이 조그마한 공간은 지난 10일(한국시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한 뒤 국내·외 관광객들과 주요 외신,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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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영화 ‘기생충’에 ‘피자시대’로 등장한 ‘스카이피자’, 13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스카이 피자’ 내부.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김보영 기자)영화 ‘기생충’ 촬영장소로 등장한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가게 전경. (사진=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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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사겠다는 손님도”…인증 맛집 된 ‘기생충’ 피자집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비롯한 세계 주요 영화 시상식을 휩쓸면서 영화의 배경이 된 촬영장소들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스카이피자’를 비롯해 서울 마포구의 ‘돼지쌀슈퍼’와 가게 인근 계단, 종로구에 있는 자하문 터널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서울시도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 나섰다.

‘스카이피자’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피자 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교(조여정 분)네 집사인 문광(이정은 분)을 몰아내기 위한 공모를 벌이던 장소다. 극 중에선 ‘피자시대’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올해로 18년째를 맞은 동네 토박이 가게로 영화에서 나온 피자 박스 접는 방법은 엄홍기 사장이 배우들에게 직접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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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피자’ 가게 안을 들어서면 엄홍기 사장 부부가 봉준호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사진=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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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들이 ‘스카이피자’에 다녀간 뒤 남긴 방명록 내용 발췌. (사진=김보영 기자)


엄홍기 사장은 “아카데미 수상 후 방문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 매출이 이틀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오늘치 재료가 벌써 다 소진돼 피자는 안 팔고 치킨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피자를 도맡아 만드는데 아직까지 큰 혼란은 없지만 주말이 되면 사람이 더 몰릴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테이블 좌석 곳곳은 셀카봉과 핸드폰 삼각대를 설치해 인증샷을 남기려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피자를 먹는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는 손님들부터 먹방 리뷰를 목적으로 방문한 유튜버들까지 눈에 띄었다.

자신을 유튜버라고 소개한 김구민(가명)씨는 “수상 소식 다음 날 먹으려 방문했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길을 돌렸었다”며 “그 때 재료소진으로 못 먹었는데 오늘 드디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영화의 장면들을 곱씹으며 피자를 먹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은빈(23)씨는 “‘기생충’ 촬영 당시 쓰였던 ‘피자시대’ 상자가 그대로 쌓여 있어 신기했다. 가게에 비치된 봉준호 감독의 사진, 영화에서 충숙(장혜진 분)이 뜨개질로 만들던 친환경 수세미, 칸 영화제 수상 축하 현수막과 싸인 등 소품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엄홍기 사장은 “‘피자시대’ 로고가 박힌 피자 상자를 얼마가 됐든 돈을 주고 사 갈테니 달라고 요청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며 “충숙을 기억하며 친환경 수세미를 사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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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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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쌀슈퍼 가게 앞에 ‘기생충 촬영 우리슈퍼’란 문구가 새겨진 인쇄물을 부착하는 지역 주민. (사진=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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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도 질서 정연”…슈퍼 사장이 전한 뒷 이야기

돼지쌀슈퍼 역시 사진 찍으러 몰려 든 외신과 관광객, 지역주민들로 북적였다. 이 가게는 영화에서 기우(최우식 분)가 친구인 민혁(박서준 분)에게 연교의 집 과외 아르바이트를 소개 받으며 소주 잔을 기울인 장소다. 영화에선 ‘우리슈퍼’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남편 이정식 사장과 가게를 운영 중인 김경순씨는 “시상식 바로 다음 날에는 가게를 연 오전 9시부터 문 닫는 오후 10시까지 끊임없이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음료,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손님들 덕에 매출도 조금 늘었다”며 “문화 쪽을 잘 모르지만 영화란 좋은 취지로 지역 상권과 우리 가게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흔쾌히 (촬영을) 승낙했다”고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미담도 전해졌다. 이정식 사장은 “촬영 당시 혼잡을 예상해 걱정했는데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일사분란히 움직여 교통 정리까지 완벽히 마무리됐다”며 “감독은 앉아서 지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움직이고 질서를 정리하며 발로 뛰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질서 있게 촬영해서 지역 주민 불만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슈퍼 바로 옆 후미진 골목 계단도 SNS 인증 포토존으로 활약 중이다. 영화에서 기정(박소담 분)이 복숭아를 사들고 미소지으며 집으로 향할 때 오르는 계단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 마포구는 돼지쌀슈퍼에서 인근 골목 계단까지 이어지는 손기정로32 일대를 골목 투어 코스로 개발해 ‘기생충길’을 조성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다.

또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13일 영화 ‘기생충’의 촬영지와 함께 봉 감독의 또 다른 연출작인 ‘괴물’, ‘살인의 추억’, ‘옥자’, ‘플란다스의 개’ 서울 촬영지를 묶어 관광 코스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내외 영화 팬,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팸투어도 기획 중이다.

다만 일부 지역 주민은 촬영지가 주택가가 즐비한 주거 밀집지역인 만큼 지나친 관광 인파와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돼지슈퍼 인근 상인 A씨는 “우리 동네가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에 등장했다는 점은 영광이지만 며칠 째 가게 앞을 진을 친 카메라들과 관광객 때문에 통행이나 영업에 지장이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은영 서울시 관광산업과 과장은 “영화 촬영 장소 인근 지하철 역과 노선 등에 명소유도판을 붙여 촬영장소까지 쉽게 안내될 수 있는 방향을 추진 중이며 인증샷 릴레이가 꾸준히 이어지는 만큼 촬영지 포토존을 따로 설치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또 일각에서 제기 되는 오버투어리즘(너무 많은 관광객이 관광지에 몰려들면서 주민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 우려에 관해서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있었던 북촌의 경우 현재 ‘걸어다니는 관광안내사’(레드엔젤) 제도를 실시해 관광안내사들이 관광지 일대를 거닐며 혼잡을 막기 위한 노력을 펼쳐 많이 개선된 상태”라며 “‘기생충’의 촬영지 관련 상황을 꾸준히 주시할 계획이며 필요 시 관광안내사를 둬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방면도 함께 검토해보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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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기정(박소담 분)이 복숭아를 사들며 오르던 계단. 돼지쌀슈퍼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해 있다. (사진=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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