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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30년 전 건져 올린 한 컷…‘창백한 푸른 점’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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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컴퓨터 기술로 보정한 지구 사진의 인문학적 의미

경향신문

‘저 점을 다시 보십시오. 바로 이곳은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들어본 사람 모두가 저 점 위에서 인생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습니다.’

태양계 밖 우주를 탐사하는 임무를 띤 보이저호 운영 계획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자문위원을 맡았던 칼 세이건(1934~1996·사진)은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과학 대중화 활동가였다. 세이건이 1994년 출간한 책에서 풀어낸 어느 ‘점’의 의미는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그의 과학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제1장에 실린 문장의 일부다. ‘점’의 정체는 바로 우주 공간에서 찍힌 희미한 사진 속 ‘지구’였다.

세이건은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코스모스>를 1980년 출간했고 조디 포스터,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미국 영화 <콘택트>의 원작이 된 동명 소설을 1985년 발표했다. 최근 지구 저궤도에 발사돼 현장 시험을 거치고 있는 차세대 우주선 ‘솔라 세일(solar sail)’의 개념을 1970년대 미국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역설했던 것도 세이건이다. 솔라 세일은 액체 수소나 등유에서 뽑아내는 화학 에너지가 아니라 태양에서 나오는 빛 알갱이, 즉 광자의 힘을 얇고 넓은 금속성 돛으로 받아내 추진력을 만들자는 개념이다. 연료를 실을 필요가 없는 로켓이다.

수십 년 앞선 선견지명을 갖췄던 세이건은 지금까지도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천문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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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14일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동그라미 안·왼쪽 사진). 먼지처럼 작아 보인다. 인위적인 색상을 입혀 다소 부자연스럽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최신 컴퓨터 기술로 보정해 지난주 공개한 ‘창백한 푸른 점’. 좀 더 선명해지고 색감도 푸른색으로 통일돼 있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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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14일, ‘보이저 1호’가 60억㎞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

우주의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 인간, 그 오만함을 깨고 싶었던 칼 세이건

먼 거리와 기술적 어려움보다 큰 장애는 카메라를 돌리는 일이었다


<창백한 푸른 점>이란 저서의 제목은 세이건이 지구의 사진을 보고 느낀 감흥을 담아 붙인 것으로, 지금은 책과 사진 제목으로 동시에 통용된다.

사진이 찍힌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 2월14일이다. NASA는 지난주 최신 컴퓨터 기술로 해당 사진을 보정해 전 세계에 공개했다. 다소 무거운 색감을 바탕으로 파란색과 녹색, 보라색 필터를 써서 구현했던 사진을 지구에서 바라본 맑은 하늘처럼 가벼운 색감으로 교체했다. 화질이 좋아졌으며, 특히 지구를 가로지르는 광선을 백색으로 교체해 가시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새롭게 공개된 사진 역시 ‘창백한 푸른 점’의 본질은 그대로다. 구름과 바다가 어울린 커다란 지구가 아닌 한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티끌 같은 존재가 찍혀 있다. 당시 ‘촬영 기사’는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였는데 지구와 무려 60억㎞ 떨어진 거리였다. 지구와 해왕성이 45억㎞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원거리에서 셔터를 누른 셈이다.

이런 사진은 왜 찍었을까. 당시 보이저호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세이건의 의지 때문이었다.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췄던 그는 스스로에 대한 맹신에 빠진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있어서 먼지에 지나지 않는 지구의 사진보다 좋은 수단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우주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오만함을 한 장의 사진으로 반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사진은 우여곡절 끝에 운좋게 건져 올린 측면이 컸다. NASA는 최상의 조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 전날 보이저 1호 카메라를 3시간 동안 예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구는 지나치게 작은 피사체였다. 지구의 크기는 0.12픽셀에 불과했다. 촬영이 성공할지 확실치 않았지만 우연히 산란된 태양광 안에 지구가 들어오면서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잡아낼 수 있었다.

‘창백한 푸른 점’이 촬영되기까지는 기술적인 어려움 말고도 또 다른 장애가 있었다. 당시 NASA 내부에서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등 뒤로 돌리는 행위에 명백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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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1호 상상도. 1990년 2월14일, 지구에서 60억㎞ 떨어진 거리에서 ‘창백한 푸른 점’ 촬영에 성공했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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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0도 아래의 극한 환경에서 운영되는 원거리 이동 우주선에는 언제든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이 때문에 조작 하나하나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히는 데 집중돼야 한다. ‘철학적 사색’을 위해 내어줄 시간과 노력은 없다는 얘기였다. 결국 NASA 내부에서 중재가 이뤄지며 극적으로 촬영이 진행됐지만 그 뒤 이렇게 주목받은 ‘대작’은 나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찍힌 ‘창백한 푸른 점’을 처음 목격했던 당시 NASA 보이저호 사진처리팀의 캔디스 한센코하체크 박사는 지난주 미국 매체 ‘포브스’를 통해 “지구를 처음 봤을 때 등골이 오싹했다”며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같은 기분”이라고 회상했다. 보이저 1호는 이 사진을 찍고 34분 뒤 카메라 운영을 완전히 정지했다. 먼 우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 동력을 아끼기 위한 조치였다. 중요한 기능 하나를 잃기 전에 일종의 ‘유작’을 탄생시킨 셈이다.

화질은 선명해졌지만 지구가 티끌 같은 존재라는 본질은 그대로

기후변화의 거대한 위기 앞…‘푸른 점’을 지킬 책임은 깊고 무겁다


세이건은 사진과 같은 이름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도움이 올 것이라는 암시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집인 ‘창백한 푸른 점’을 지키고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최근 인류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했다. 칼 세이건이 강조했던 ‘창백한 푸른 점’의 의미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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