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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수사 중에 꼬리 잡았다…문중 조차 도난 사실 몰랐던 '조선 사대부 문집 목판'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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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 9월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안동 권씨 충강공 종중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던 ‘권도 동계문집 목판’ 135점이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문화재사범단속반은 2018년 11월 보물 ‘만국전도’(제 1008호) 수사과정에서 도난당한 ‘권도 목판’ 중 일부를 확인하고 본격수사를 벌여 134점을 회수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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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이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1994년 서울 휘경동에서 발생한 ‘만국전도(보물 제1008호) 도난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만국전도’는 다른 함양 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류 필사본(116책)과 함께 7종 46점이 보물로 일괄지정된 바 있는데 이것이 한꺼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수사결과 ‘만국전도’ 등은 문화재사범 ㄱ씨가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인줄 알고도 확보한 뒤 자신의 아내가 운영하던 식당 벽지에 은닉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그런데 이 ‘만국전도’ 등의 수사 과정에서 충북 충주의 문화재 매매업소를 압수수색하던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의 시선을 끄는 유물이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심상치않은, 고색창연한 목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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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 동계문집 목판’(경남도유형문화재 제233호)이 소장되어 있던 경남 산청의 장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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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결과 이 목판은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의 안동 권씨 충강공 종중의 장판각에 소장돼있다가 2016년 9월 사라진 ‘권도 동계문집 목판 135점’(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 중 일부였음이 드러났다. 보물 ‘만국전도’ 등 도난사건을 수사하다가 다른 사건의 꼬리까지 잡은 셈이었다. 일단 ‘만국전도’ 등 도난문화재의 회수를 끝낸 사범단속반은 ‘권도 동계문집 목판’ 도난 사건에 전력을 다했다. 단속반은 도난 목판과 관련, 문화재 사범과 동종업에 종사하는 업자들을 대상으로 유통경로를 파악했다.

훔친 목판과 관련된 첩보가 입수돼 본격수사가 진행됐다. 단속반은 결국 압수수색한 충주의 창고에서 은닉된 목판들을 확인했고, 모두 134점을 찾아냈다. 수사결과 목판을 빼낸 이는 종중 사람 ㄴ씨였다. ㄴ씨는 안동 권씨 종중 장판각에서 보관 중인 ‘권도 동계문집 목판’을 세차례에 걸쳐 빼낸 뒤 문화재 매매업자 ㄷ씨에게 1000만원을 받고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입건됐다. 그랬기에 종중에서는 단속반이 통보한 뒤(2008년 11월)에야 도난사실을 알게됐다. 결과적으로 종중은 2년5개월동안 빈 장판각만 지킨 셈이 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임시보관한 목판 134점을 5일 공개했다.

회수된 ‘권도 동계문집 목판’은 조선 중기의 문신 권도(1575~1644)의 문집(<동계집>)을 찍으려고 제작한 나무책판(가로 52㎝×세로 28㎝×두께 3㎝)이다. 이 책판은 1809년(순조 9년) 간행됐다. 모두 8권이며. 서문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정종로(1737~1816)가, 발문은 김굉(1739~1816)이 각각 썼다. 권1∼2에는 시, 권3에는 만(挽·죽음 사람을 위한 애도문)과 부(賦·산문), 권4에는 교서, 소(疏·상소문), 답사, 계사(啓事·임금에게 사실을 적어 올리는 글) 등이 권5에는 서(편지), 권6에는 잡서, 책문, 표전(表箋·소회를 적어 임금에게 올리는 글), 권7에는 축문, 제문, 묘갈(墓碣·묘비에 적는 글), 명지(銘誌·비석에 새긴 글), 행장(行狀·죽은 사람의 발자취), 권8에는 부록, 연보가 들어가 있다. 이 책판에는 이와같은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어서 당시 향촌 사회의 모습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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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수사 끝에 찾아낸 ‘권도 동계문집 목판’ 134점. 조선 중기의 문신 권도의 시와 편지, 상소문, 산문, 축·제문, 표전, 묘갈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실려있어 당시 향촌 사회의 모습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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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당초 도난 신고된 목판 수는 135점이었지만 134점만 회수되었다는 것이다.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절도범이 훔친 목판수도, 팔아넘긴 목판수도 134점이라는 진술이 나왔다”면서 “1점은 언제, 어떤 단계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동계 권도는 1601년(선조 34년) 진사시에 합격했고, 1610년에 승정원주서에 제수돼 1613(광해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6월 승정원주서에서 나간 이후 홍문관, 성균관, 사헌부 등에서 근무하였고, 64세 때 통정대부에 올라 이듬해 대사간에 제수됐다. 권도는 특히 이괄의 난(1624년) 때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수행)한 공로로, 1628년 1월 선조의 아들 인성군(1588~1628)을 옹립하려던 역모사건 때 추국청에 참여한 공로로, 잇달아 원종공신(공신 대우)에 오른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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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반환식.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도난됐다가 회수된 ‘권도 동계문집 목판’ 을 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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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문화재사범단속반장은 “도난 및 도굴 문화재의 공소시효는 사실상 사라졌다”면서 “신고된 도난 및 도굴문화재는 유통되는 순간 법망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문화재든 비지정문화재든 도난문화재를 은닉하거나 사고 파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사범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그러나 이는 문화재 절도나 도굴범에 해당되는 공소시효이다. 2002년부터는 훔치거나 도굴한 문화재를 은닉하고 있는 자도 처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도난 및 도굴 문화재인 줄 모르고 구입했다”는 변명들이 나왔다. 법의 허점을 노린 주장이었다. 그래서 2007년 이른바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했다. 즉 “도난 및 도굴 문화재인줄 모르고 구입했다”는 선의취득의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문화재의 도난신고를 받으면 도난됐다는 공고를 반드시 내게 된다. 그런데 이 공고를 확인하지 않고 문화재를 사들이면 선의취득에 해당되지 않는다. 불법이다. 또 탱화를 비롯한 회화작품의 경우 일부러 출처를 지우거나 낙관을 훼손한 다음에 팔고 사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역시 불법이다. 결국 문화재 은닉과 거래의 공소시효는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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