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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김세형 칼럼] 文지지율 급락, 신년회견 뭐가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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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사진=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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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월 14일 신년 회견 표정이나 자신감은 역대 최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투에 자신감이 묻어나고 표정에도 생기가 넘쳐흘러 파란색 양복이 어울렸다.

국회가 연말연시 문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3개 법안(선거법,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해치운 직후라 무척 홀가분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우리 정치는 국민의 삶은 생각 않고 맨날 싸우기만 하는데 다음 총선에서 반영돼야 한다"고 국회를 질타할 때는 준엄하기조차 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은 속으로 '최고!'라며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을 터다.

그런데 기자회견 직후 대반전이 일어났다.

좌편향의 리얼미터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긍정 46%, 부정 51%로 급전직하했고 이어 나온 갤럽 조사에서도 긍정 45%, 부정 46%로 역전됐다.

국민은 패스트트랙 3개 법안 통과, 추미애의 검찰 인사,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본 것 같다. 독재로 가고 있다는 의심에 방점을 둔 것일까.

그렇다면 신년 기자회견을 짠 청와대 진용의 프로세스에 뭔가 오판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번 신년 회견을 하면서 청와대, 여권은 아무런 각본 없이 무슨 질문이든 받아 설명한다(자신 있다!)는 홍보를 많이 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짜인 각본에 의해 미리 질문서를 받고 기자들 질문 순서까지 정해 행사를 치렀는데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

문 대통령은 전혀 그런 거 없이 자유자재로 답변할 실력과 무한한 질문의 자유를 주는 정의롭고 공정한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자랑했다.

여기서 묻자.

신년 대통령 기자회견은 왜 하는가?

그것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무슨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고지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뽑은 최고 서비스맨으로서 2020년에 뭘 서비스할 건가를 보고하는 행사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 말했던 대로 지지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도록 올해의 국정 설계를 선보여야 한다.

선진국 국가수반 치고 신년 회견을 하지 않고 견딜 자는 없다.

그러니까 신년 회견은 온 국민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이 큰 원칙을 착각하면 사고를 친다.

신년 회견에서 국민을 대신해 묻는 자가 기자다.

기자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충실하게 대변할 책무가 있다. 기자회견의 룰(rule)도 그렇게 짜여야 한다.

이것이 안 지켜지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대통령은 기자가 물으면 답하는데 질문자에 대한 전적인 지명권은 대통령의 손가락에 달려 있다.

대통령 회견을 월 6회, 연간 70번 이상 한다는 미국의 경우 룰이 어떤지 살펴보자.

전통과 관습법이 우선하는 백악관 기자실엔 앞부분과 중앙 쪽으로 주요 언론사에 좌석을 배치하는 관례가 있다.

그리고 한번 질문권을 얻은 기자는 대통령의 답변이 핵심을 비켜가면 2~4회 보충질문권을 보장받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와 질의응답에서 감정적인 설전이 벌어져 "당신은 지금 질문을 10분이나 하고 있다"며 싸운 광경이 기억날 것이다.

닉슨을 탄핵시킨 특종기자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는 대통령과의 회담은 그야말로 '말의 전쟁'이라고 매경 세계지식포럼에서 말했다.

아마 밥 우드워드나 짐 아코스타가 문 대통령과 회견했다면 대번에 "송우철 울산시장 선거에서 공천을 주는데 당신이 직접 개입했나. 임재수 감찰권 무마를 조국에게 보고받았나"라고 인정사정없이 물었을 것이다. 아마 그게 첫 질문이었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비서관들의 비리, 혹은 조국 수사와 관련 있는 검찰 책임자에 대한 인사를 하는 것은 사법방해일 텐데 왜 반대하지 않았는지도 물었을 것이다.

우리 청와대 기자실은 창간 100년의 언론사라고 해서 앞줄이나 중앙 가운데에 좌석을 주지 않는다. 그냥 도착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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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폴라 행콕 CNN 서울 특파원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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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년 회견에서 대통령은 그들이 어디 앉았는지 알지 못했는지 조선 중앙 동아 매경 한경 등 메이저 언론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지 않았다.

트럼프가 앞줄이나 가운데 앉은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 CNN,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곳에 소속된 기자에게 한 명도 질문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마쳤다면 미국 조야는 언론의 자유가 죽었다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안 했을 것이다.

백악관 기자실은 우리처럼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이런 식으로 질문 구성을 칸막이하는 일은 추호도 없다.

중요한 사안의 논의가 덜 끝났으면 계속 그 문제를 끝까지 다루는 식이다.

우리 대통령 회견은 청와대가 갑이고 언론이 을이다.

청와대가 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 하므로 '청와대 맘대로'가 안 되도록 역대 기자단은 '각본'을 만들었다.

내 자신도 청와대 출입 때 그렇게 했는데 그것이 더 공평하고 정의로웠기 때문이다.

이런 각본이었다. 시간이 총 100분이라면 질문·답변은 20개를 한다고 보면 중요한 순서로 늘어놔보자. 이런 질문은 꼭 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 지명을 받더라도 1, 2, 3…20번째까지 질문을 중도에 빠뜨리지 않고 이어간다.

기자실의 지혜를 총체적으로 모으고 여야 편가르기가 아니라 국민에게 국가 운영에 중요한 순서대로 묻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 검찰 인사에 대해 물었으나 수사가 청와대를 향하니 손발을 자른 거 아니냐는 보충 질의는 못 했다.

공수처 연비제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좌파 독재로 간다는 우려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묻는 기자도 없었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40일도 못 버티고 내려온 것은 결국 임명 실패인데 조국 딸의 입시 문제가 잘못됐다며 외고 자사고 등을 폐지하는 쪽으로 엉뚱하게 몰아 결국 강남 부동산을 폭등시킨 결정 과정의 착오에 대해 설명 요구도 없었다.

탈원전으로 한국 산업이 보는 손실이 1000조원이나 된다는 전문가의 지적과 더불어 월성 1호기 폐쇄 절차를 두고 국정농단이란 말까지 나오는데 그에 대한 질문조차 없었다.

경제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는데 가장 중요한 경제지표가 뭐라고 평가하는지, 평소 경제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김정은이 왜 그렇게 우리 대통령에게 험한 말을 하는지, 그렇게 서운하게 될 계기를 설명받지도 못했다.

대통령의 손가락이 운 좋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준비한 메이저 언론인을 피해갔는지, 대통령이 그들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지, 아니면 송곳질문을 준비한 기자가 처음부터 부재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출입할 당시처럼 각본을 짰더라면 대통령이 주요 언론사에 질문권을 설사 안 줬다 하더라도 위의 문제들은 꼭 다뤄졌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각본이 있는 것과 없는 쪽, 어느 쪽이 우수한가. 어떤 방식이 공정하고 자랑스러운가.

대통령 회견 후 각계에서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검사내전'으로 유명한 김웅 부장검사가 "검찰개혁이라는 거대한 사기극에 항의하고자 사표를 낸다"며 나갔고 교수 6094명으로 구성된 '정교모'가 헌정 질서 위반이라며 성명을 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남 김현철 석좌교수는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이라며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극렬한 표현을 썼다. 역대 변협 회장을 포함한 법조인 130명도 반대 성명을 냈다.

연말 연초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법안들을 국회에서 해치우고 검찰을 내 편으로 채워 여권을 겨냥한 칼을 부러뜨린 추미애의 인사는 대통령 지지율로 보면 51%가 반대한다는 게 맞는다.

대통령 회견 후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내용이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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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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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내용은 조국이 고초를 겪어 마음이 아프며 윤석열 총장은 선택 수사를 감행하는 곤란한 자이며, 국회는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데 총선에서 봐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들이 여운을 남겼다.

남북 관계는 지금껏 북·미 대화가 진전되는 것 보고 하려다 진척이 없어 이제 우리끼리 좀 해보자는 거였는데 그후 금강산 개별 관광을 둘러싸고 해리 해리스 주미 대사 발언으로 한미 간 긴장이 고조됐다.

부동산 투기는 더욱 옥죄겠다, 개헌은 이제 청와대발이 아닌 국회발로 하려면 해라, 징용 배상 판결 후 일본 기업 재산 매각 문제, 기업은행 낙하산이 옳은가 등등에 대한 코멘트도 생각난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이후의 삶을 묻는 질문은 제법 날카로웠다.

문 대통령은 좀 깜짝 놀란 것처럼 주춤했는데 집권 후반기로 막 접어들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는지, 그래서 퇴임까지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퇴임 이후 잊혀지고 싶다"는 답은 엉겁결에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한국에서 생존한 전임 대통령은 재임 시 뒤탈이 많으면 잊힐 권리가 없다.

당장 탈원전 정책을 대통령의 직무 유기로 고발하겠다는 인터뷰 기사가 버젓이 게재되지 않나?

문 대통령은 광화문 서초동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행동을 두둔해 온 측면이 있고 그것이 나라를 두 동강 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년 회견 시 대통령의 답변은 국민의 양쪽 의견 모두를 대변하고 있었는가.

그런 방식으로 신년 기자회견도 구성되고 질의응답이 이뤄졌는가. 무엇보다 진실만을 말했는가.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안 지켜지고 있는지와 신년 업무보고를 받고 “가짜뉴스 엄단하라”는 지시를 보면서 국민은 무엇이 가짜인지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2020년 대통령 신년 회견 이후 지지율 급락, 반대 성명 쇄도가 남긴 과제는 그것이다.

김현철 교수 지적대로 국민을 노리개로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가 리더의 임무는 국민의 행복과 발전에 두고 유권자의 선택은 겸허하게 받는 것이다.

권력은 장악하는 게 아니며 가장 큰 죄는 오래하는 것이다.

'권력의 탄생'에서 레슬리 겔브가 "권력은 교대하는 것"이라고 한 명언은 음미할 만하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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