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신뢰의 기술이라던데···왜 업계 종사자 중에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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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질리도록 듣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신뢰’다. 블록체인은 신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 거래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트러스트리스(trustless)’ 기술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블록체인을 ‘신뢰의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같이 신뢰를 강조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간 만난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 중에서는 신뢰와는 거리가 먼 이들도 많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신뢰, 아이러니하다.
“국제기구가 블록체인을?”···혼동하기 딱 좋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들
세계 최대 정부 간 국제기구인 유엔(UN). 블록체인 업계에도 유엔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A 씨가 있다. A 씨는 한 사단법인의 대표 자격으로 책을 집필하고, 강연을 나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시내 대형 호텔에서 열린 블록체인 관련 컨퍼런스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A 씨가 속한 사단법인의 명칭 가장 앞 두 글자는 유엔이다.유엔난민기구, 유엔국제이주기구,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동북아사무소 등 유엔 산하의 정식 기구 및 사무소들의 명칭도 ‘유엔’으로 시작한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다면 A 씨의 사단법인 또한 유엔 산하 기구로 착각하기 쉽다. 이 사단법인의 로고는 올리브 가지가 지구를 둘러싼 모양이다. 유엔의 로고와 매우 비슷하다.
A 씨는 본인을 ‘유엔XX’의 대표라고 소개하며 4차 산업 전문 강사 자격증을 판매했다. 수업료를 내고 자격증을 취득했던 한 수강생은 “유엔 회원 15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정식 등록된 자격증도 아니었다. 수강생들은 자격기본법 위반으로 A 씨와 동업자인 A 씨의 남동생을 신고했다.
해외 프로젝트의 ICO를 국내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A 씨의 활동 중 하나였다. 그가 대표직을 맡은 사단법인 홈페이지에는 자신이 자문역으로 참여한 ICO 프로젝트가 정리된 메뉴가 개설돼 있다. 투자자 중에는 A 씨가 판매했던 자격증 수업을 이수한 후 ICO까지 참여한 사람도 있다. 수업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중요성을 배우다 보니 ICO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었고, A 씨를 유엔 종사자로 착각해 ‘믿을만한 ICO’라고 생각했다는 게 한 투자자의 주장이다.
A 씨의 사단법인 영문 명칭에는 유엔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 국문 명칭에만 유엔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다. 국내에 소재한 정식 유엔 산하 사무소에서도 A 씨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 유엔 산하 사무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유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A 씨가 저자로 이름을 올린 책 제목에도 유엔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책 제목을 바꿔 달라 요청한 바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 2016년 “유엔을 사칭하려는 게 아니”라며 “오해를 피하고자 사단법인 명칭을 시일 내 변경하고자 한다”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그 후로 약 3년 반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그 명칭은 바뀌지 않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블록체인, 어떤 기술인지 아시는 것 맞죠?”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가 가진 특징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해 신뢰를 반감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하지만, 관행은 바꾸고 싶지 않아 한다. 블록체인이 기존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인데도 말이다.모 블록체인 프로젝트 대표인 B 씨는 SNS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만 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신뢰만큼이나 많이 언급하는 게 ‘글로벌’이다. 블록체인은 업종, 국경 등 다양한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기술이다. 암호화폐가 장 마감 없이 24시간 거래되는 이유도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이 동시에 거래를 진행하고 특정 국가나 규제당국의 관리를 받고 있지 않아서다. 그런데 우리 시간 기준 9시부터 6시 딱 9시간만 암호화폐를 거래하자니, 암호화폐의 특징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블록체인 업계에는 기술 자체가 좋아서 또는 미래 가능성을 보고 기술 발전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는 말처럼 위에 언급한 ‘신뢰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업계 전체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노윤주기자 daisyroh@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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