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위협 입박했는지 중요치 않아”
"미국인 죽인 '나쁜 사람' 죽였다" 정당성 주장
NBC "지난해 6월 솔레이마니 제거 이미 승인
'임박 위협' 아닌 사후 보복, 정당성 약화"
국무·국방장관, 대통령 반박 안 하지만
"증거 보지 못했다" 정당성 의구심 커져
13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출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솔레이마니는 미국인을 많이 죽인 나쁜 사람이라 죽였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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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란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참수’할 때 미국은 ‘임박한 위협’이 있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난 13일(현지시간) 그 위협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솔레이마니의 끔찍한 과거 전력으로 볼 때 임박한 위협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발언은 경우에 따라서는 ‘임박한 위협’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서 “가짜 뉴스 미디어와 그들의 민주당 파트너들은 테러리스트 솔레이마니에 의한 미래의 공격이 ‘임박’했었는지, 그리고 나의 팀이 의견일치를 봤는지 아닌지를 밝히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답은 둘 다 강력한 ‘그렇다(YES)’이다. 하지만 그의 끔찍한 과거 때문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솔레이마니 제거는 임박한 위협에 따른 것이었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설사 임박한 위협이 없었더라도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끔찍한 과거’를 언급한 것은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미군 600명의 죽음에 책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살해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4개 대사관 공격에 대한 첩보 내용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고 즉답을 피했다. 대신 "우리는 모든 면에서 세계 일등 테러리스트인 솔레이마니를 죽였고, 이미 20년 전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솔레이마니가 미국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죽인 나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솔레이마니를 민주당이 방어하려고 하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발언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임박한 위협이 없는데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것이라면 미국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란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대통령 권한 남용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여론은 갈렸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끔찍한 과거가 있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느냐”며 옹호했다.
이날 NBC방송은 "이란의 공격으로 미국인이 사망할 경우 솔레이마니를 살해한다는 계획을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6월에 이미 조건부로 승인했다"고 전했다. 보도가 맞는다면 미국에 대한 '임박한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인 사망에 대한 보복으로 솔레이마니 제거를 계획했다는 뜻이 된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의 정당성을 약화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임박한 위협’ 논란을 정치 논쟁으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 그는 별도 트윗에서 “민주당 인사들과 가짜 뉴스 미디어가 테러리스트 솔레이마니를 아주 멋진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20년 전에 처리됐어야 할 일을 내가 했다는 이유만으로”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든, 군사든, 그 어떤 것이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급진 좌파들, 아무것도 안 하는 민주당은 경멸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일을 했지만, 민주당과 언론 등 반대 진영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논란을 만들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트럼프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슬람 터번과 여성이 쓰는 히잡을 각각 머리에 두른 합성사진에 ‘부패한 민주당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구출하러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문구를 적어 조롱한 다른 사람의 트윗을 재전송하기도 했다.
지난 열흘간 솔레이마니 제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시시각각 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낮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솔레이마니가 미국 대사관을 폭파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오하이오주 유세에서는 “솔레이마니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고, 바그다드 대사관뿐 아니라 다른 대사관들을 매우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1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솔레이마니가 공격을 계획한 대사관은 모두 4곳이라고 밝혔다.
참모들은 임박한 위협에 대한 확신이 대통령만큼은 없어 보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언제, 어느 대사관이 공격받을지는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솔레이마니가 계획한 일련의 임박한 공격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도 “정확한 시기와 위치는 모르지만 (위협은) 실재했다”고 주장했다.
시기와 장소를 모르는 공격이 임박한 위협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지난 10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폼페이오에게 “장관이 생각하는 ‘임박한’이란 단어의 정의가 뭐냐”고 질문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12일 솔레이마니가 미국 대사관 4곳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CBS 일요 시사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냐’는 질문에 에스퍼 장관은 “나는 못 봤다”고 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폭스뉴스에서 이란이 “미국인을 죽이고 미국 시설을 파괴할 길을 찾고 있다는 강력한 첩보가 있었지만, 정교한 첩보 능력으로도 정확한 타깃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고 옹호했다. 당국자들이 엇갈린 발언을 내놓으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 각료들이 대통령 발언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공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하원 외교위원회는 미국의 대이란 적대 정책에 대한 질의에 폼페이오 장관의 출석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 전했다. 엘리엇 엥걸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새로운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행정부 내에서 대단히 혼란스러운 설명들이 나오는 가운데 국무장관은 국민 앞에서 정확히 설명하고 질문에 답할 기회를 반겼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솔레이마니 제거 명분으로 ‘임박한 위협’을 들며 그 정당성을 역설해왔으나 민주당 등에서는 임박한 위협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미국은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인근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정예 부대) 사령관인 솔레이마니와 장군 등 일행을 드론 공격으로 참수했다. 닷새 뒤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 2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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