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정치벤처’…정치결사의 자유 있어 단속할 일 아냐
선관위 등록현황 정당 34개에 창당준비위원회 17개나
당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일단 중앙당창당준비위(창준위)를 만들고 선관위에 결성신고를 해야 한다. 발기인으로 200명을 확보해야 하고, 발기인 대회에 그중 100명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 창준위 결성신고 후 주어진 창당활동 시한은 6개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창준위 이후에는 시·도당 결성 작업을 해야 한다. 선관위에 시·도당을 신고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은 5개 시·도에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는 것. 당원들의 주소지는 관할 시·군이어야 한다. 시·도당 창당대회 후 다시 선관위에 등록신청 및 회계책임자를 선임해 신고하면 비로소 중앙당 창당절차를 밟을 수 있다. 매우 까다롭다. 규정대로 하자면 적지 않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는 ‘창당일기’를 보면 아직 시작단계다. 하지만 ‘발기인 200명’부터 암초를 만났다. “사람들이 오게 하려면 뭐든 줘야 한다”는 한 정치권 선배의 ‘조언’에 그는 벌컥 화를 냈다고 적고 있다. 결론은? 5000명을 찾아 그가 일일이 전화하는 것이다. 벽은 높고 시간은 없다. 12월 31일, 그는 “술을 좋아하지만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금주(禁酒)를 결심했다”고 페이스북 일지에 글을 남겼다.
결혼미래당 창당을 준비 중인 이웅진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창당 작업 관련 서류. / 결혼미래당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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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박기? 나름 족보 있는 ‘비례한국당’
선거 시즌만 되면 수많은 당이 난립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선관위의 정당등록현황(1월 2일 현재)을 보면 정당이 34개, 창당준비위원회가 17개다. 주요 정당을 제외하곤 태반이 원내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정당들이다. 창당준비위까지 전체 51개 정당의 목록을 찬찬히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발견된다. 이웅진 대표 같은 사례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지난해 10월 23일 등록된 ‘비례한국당’이 주목을 받았다. 선거법 개정을 염두에 둔 ‘알박기’가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러나 비례한국당 측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례한국당의 뿌리는 2015년 12월 창당한 애국당이다. 애국당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통일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이 당은 다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곤 국민참여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선관위에 등록했다.
최인식 비례한국당 대표(63)는 통일한국당 시기 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을 후보로 낸 당이다. 최 대표는 아스팔트 우파단체인 국민행동본부 사무처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인사다. 말하자면 자유한국당과 무관하게 나름의 계보를 가진 정당인 셈이다. 비슷한 이유로 화제를 모은 비례민주당 창준위도 비슷한 자기 족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의 ‘유사명칭 사용불허 요청’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30일 비례민주당 등록을 허용했다.
이색정당으로 소개되고 있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은 허경영씨가 지난해 9월 창당했다. 정식 등록된 당이다. 허경영씨는 1997년 공화당을 창당한 이래 민주공화당(2000년, 2008년), 경제공화당(2007년), 친허연대(2015년) 등 선거 때마다 당을 만들어왔다. 정작 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씨를 보좌하고 있는 박병기 본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대선에 10년 동안 못 나가게 되면서 이전에 창당한 경제공화당은 활동 기한에 걸려 소멸됐고, 그 후 공화당이라는 이름은 신동욱 총재가 가져갔다”며 “지난해로 허 대표의 피선거권 제한이 풀려 현재 정치활동상 제약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허 대표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비례 1번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농사꾼이 농사철에 농사 안 짓느냐는 말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온다. 우리가 볼 때는 될 가능성이 없지만 다 자기의 잣대로 표 계산을 하면 당선된다고 한다. 그걸 믿는 사람들이 또 후원하는 것이고….” 20년 넘게 정당인으로 활동해온 민병홍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인맥과 자금만 있으면 시·도에서 당원 1000명을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모 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해 다른 당 당헌·당규를 살펴봤는데 당원의 이중당적을 문제삼는 규정이 없다. 다들 이 당 저 당 입당원서를 써주고 탈당하더라도 탈당계도 안 낸다. 다만 후보로 출마할 때는 당적 정리를 해야 한다.”
기존 유력 현역 정치인이 창당하는 경우는 다르다. 안철수 전 대표가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는 대여형식으로 창당자금을 마련했다. 대여금은 창당 후 국고보조금을 받아 회수하는 형식이다.
허경영씨가 준비 중인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로고 / 국가혁명배당금당 |
창당의 벽을 넘는 수단, 결국은 돈
“돈만 있으면 당원 모으는 것 어렵지 않다. 체육회 조직 회원명부를 사면 된다. 선거 시기에 거래되는 명부는 비싸다. 어디 경상도 시골 같으면 유림 모임 명부도 거래된다.”
2018년 지방선거 때 경기도의 한 지자체장으로 출마했던 인사의 말이다. “자금 확보? 담보대출로 50억씩 주는 사람도 있다. 로또 사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낮은 확률에 거는 것이다. 세상 누가 알겠는가. 김신조를 잡을 당시 중령(수경사 대대장)이었던 전두환이 대통령 될지 누가 알았겠나. 안응모는 일제 때 수사보 하다가 걸어서 하늘까지 국정원장까지 갔다. 1980년대 내 부친은 때려죽어도 김대중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됐잖나. 자기가 아니라면 아들이라도 장관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관료들이 정의당도 잘해준다. 민주당과 합당해서 장관하게 될지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이런 현상에 대해 “교도소 담장을 타는 일종의 정치벤처”라는 설명도 나온다. 여당 국회 보좌진을 역임한 인사의 말이다.
“선거 때만 되면 여의도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이다. 국회 앞 정당 당사들 주변에 어디서 이름을 들어본 비슷비슷한 간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데 딱 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한철 장사다. 대부분 선거일까지만 월세 임대한 사무실들이다. ‘창당할 테니 후원금 내라’며 돈을 모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간판·명함 장사다.”
어차피 될 가능성이 없는 원외인데 그게 통할까. “중앙정치만 봐서는 모른다. 어디 구청, 자치단체에 내려가면 다르다. 내가 모당 임원인데, 어디 어디 구청을 아는데 이권을 해주겠다, 이렇게 장사하는 것이다.” 이 인사는 그러나 “정치결사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걸 막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기라면 굳이 정치관련 법이 아니라도 다른 법으로 단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선거 때 당이 많이 난립한다고 우려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관위 차원에서는 지금까지 명멸을 거듭한 원외 군소정당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등록된 정당으로부터는 매년 정기보고를 받아 정당의 활동 개황 등에 대한 자료를 올리고 있지만, 사라진 정당과 관련한 자료는 따로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 때 당원명부 중복 여부 등을 검증하고 있느냐는 질문엔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등록 취소요건이 된다”며 “형식요건과 절차 외 당원명부 등을 설립단계부터 검증하지는 않고, 관련된 제보나 수사가 진행될 때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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