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마비 시키며 1년 간 극렬 대치해놓고
협상 과정에서 도돌이표…비례 1석도 안 늘리고 그마저 '상한선' 적용
지역구 의석수 지키기에 좌절…與도 다수당 계산기 두드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만 의의…한국당도 명분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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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지난 1년 간 수차례 국회를 마비시키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선거법 개정안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비례대표는 1석도 늘리지 않았고, 그마저도 비례대표 30석에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기로 '캡(상한선)'을 씌웠다. 초기의 개혁 목표는 잊고 여야 가릴 것 없이 계산기만 두들긴 결과다.
23일 본회의에 상정된 선거법 개정 수정안은 당초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린 선거법 개정안 원안과 비교하면 내용 면에서 상당 부분 후퇴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개정안 취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현행 그대로다.
대표적인 것이 의석수 비중이다. 당초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는 원안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지역구 253석 대 비례대표 47석' 현행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지 못한 것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가칭)의 이기주의,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이탈표 우려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협상 초반부터 개정안 원안 통과를 반대해왔다. 지역구 의석수를 225석으로 줄일 경우 호남 지역구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견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이탈표 등으로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의석수는 '지역구 240 대 비례 60', 또 다시 '지역구 250 대 비례 50' 등으로 1차 후퇴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례대표 의석 30석에만 적용하도록 '캡'을 씌운 것은 민주당이 계산기를 두들긴 결과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할당 의석에 캡을 씌우지 않으면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만 확보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1석도 못가져가거나 할당 의석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 불리하다고 판단, 협상에 제동을 걸었고 끝내 관철시켰다. 이는 개정안 원안에서 2차 후퇴한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또다른 다수당인 한국당에도 유리한 선거지형을 만들어준 셈이 됐다.
'4+1 협의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캡을 씌우며, 석패율제 도입에 따른 지역주의 완화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판단, 이를 철회하며 3차 후퇴했다. 결과적으로 선거법 개정 수정안은 '반의 반쪽'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외엔 현행 제도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마저도 21대 총선에만 반짝 적용되고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심 그대로 선거', '거대 양당제 혁파'라는 취지는 각 당의 이해관계와 밥그릇 이기주의가 개입되며 축소됐다.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두다보니 개혁 발걸음엔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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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정당으로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제도를 한국정치 사상 처음 도입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24일 한 라디오를 통해 "누더기가 돼있어서 참담하다"며 "선거제는 그대로 가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해서 정말 눈물을 참고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등 묵직한 과제를 앞두고 범여권 공조체제를 유지했다는 수확을 거뒀다.
법안 통과를 극렬 반대하고 있는 한국당 역시 사실상 현행 유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다. 최종 수정안은 '4+1 협의체'의 협상이 심화되며 당 내에서 제안된 연동률 축소 중재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지층을 결집했고, 꼼수일지언정 비례대표 확보를 위한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명분도 쌓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선 권성동 의원은 "우리는 기호 2번 비례정당을 만들겠다"며 노골적으로 밝혔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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