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호텔 10곳 현장 조사
조항 활용 갑질 여부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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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현장조사를 통해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와 국내 호텔 간에 체결한 계약서에 ‘최저가 보장 조항’이 삽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담팀을 발족시키면서 관련산업에 대한 집중감시에 돌입한 가운데 OTA 업체들을 겨냥한 공정위의 제재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는 10여곳의 국내 호텔들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부킹닷컴·아고다·익스피디아 등 국내에 진출한 OTA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호텔들에 실질적인 피해를 끼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호텔들이 사실상의 피해자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셈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확보한 계약서에 ‘최혜국대우(MFN)’ 조항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MFN 조항은 통상조약 등을 맺을 때 한 나라가 특정 해외국가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원칙이다. 여행 온라인플랫폼 업계에서는 ‘최저가 보장 조항’ 또는 ‘가격 동일성 조항’과 유사한 개념으로 해석된다. 4~5곳의 글로벌 OTA가 국내 호텔들과 계약하면서 MFN 조항을 통해 ‘우리 플랫폼에 제공하는 객실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다른 OTA나 호텔 자체 홈페이지에 내놓지 말라’는 내용을 적시한 셈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9월 국내외 OTA 업체, 한국여행업협회 등과 함께 민관협의체를 발족시킨 바 있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해 OTA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연구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호텔 피해조사 내용에 대한 파악을 마친 후 이르면 내년 1월 글로벌 OTA 한국지사를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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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데이터 앞세워 장악
여행 플랫폼 생태계 붕괴 우려
공정위 제재 수위·강도 고민
OTA는 관광·숙박업계가 기존 오프라인에서 웹·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등장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항공·숙박을 넘나드는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부상하며 국내 여행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글로벌 OTA의 국내 숙박예약 시장 점유율은 53.7%에 달한 반면 한국 여행사들은 6.7% 수준에 그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호텔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조사에서 OTA 업체와 체결한 계약서에 실제로 최저가 보장 조항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면서 OTA 제재 절차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OTA와 각 호텔이 맺은 최저가 보장 조항이 결과적으로 경쟁 제한은 물론 사실상의 담합 효과를 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OTA 업계의 반박 논리에도 합리적인 근거는 존재한다. 보통 호텔들은 OTA 플랫폼에 객실 상품을 제공할 때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한다. 만일 최저가 보장 조항이 따로 없다면 호텔들은 같은 객실 상품의 경우 수수료를 내야 하는 OTA에서 판매할 때보다 자사 홈페이지에 더 낮은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다. 이 경우 금액 차이가 클수록 소비자들은 OTA보다 호텔 홈페이지를 통한 구매를 선호하게 된다. 이 때문에 OTA 회사들은 “호텔 업계의 시장 ‘무임승차’를 막으려면 최저가 보장 조항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공정위가 제재 수위와 강도를 놓고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칼을 뽑았다가 자칫 여행 온라인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과대 집행의 오류’를 범할 수 있어서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미국과 유럽 경쟁당국 간에 시각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대형 프렌차이즈 호텔이 많은 미국의 경우 가격 경쟁보다는 서비스 경쟁이 활성화돼 있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을 사실상 봉쇄하는 최저가 보장 조항에 대한 경쟁당국의 규제가 느슨한 편이다. 반면 유럽에는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중소 규모의 호텔이 훨씬 많다. 이들 호텔은 자사 상품 홍보 수단으로 OTA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어 최저가 보장 조항을 규제하는 강도 역시 비교적 세다.
공정위는 이르면 내년 1월 OTA 한국지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제재 방식과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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