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대표작 <강아지똥>을 오마주한 그림책 <송아지똥>을 펴낸 유은실 작가를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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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사서가 <강아지똥>으로 수업을 했는데, 어떤 부모님이 ‘똥도 이렇게 쓸모가 있는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 똥보다 못하다’는 말을 아이가 듣고 슬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똥도 쓸모가 있다’라는 50년 전 가장 진보적이었던 메시지가 ‘쓸모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로 변질되어 전달되고 있었던 거죠.”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의 대표작 <강아지똥>을 오마주한 그림책 <송아지똥>(창비)은 이렇게 탄생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려지고 소외된 존재도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강아지똥>이 ‘쓸모’에 초점을 맞춰 오독되는 현실을 보고 아동문학가 유은실(45)은 “시멘트에서 태어난 똥인데 거름이 되지 못했다면, 그 삶은 무가치한 걸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그 결과 땅 속으로 스며들어 민들레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었던 강아지똥은 시멘트 바닥에서 태어나 거름도 되지 못하는 송아지똥의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유은실을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을 헤쳐나올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과 달리, 젊은 세대는 그런 가능성이 줄어든 세상에 사는 것 같아요. 시멘트에서 태어난 세대가 아닐까요. 앞 세대가 흙길에 시멘트는 깔았지만 꽃을 피우기 힘들고 거름도 되기 힘든 막막한 상황인 거죠. 아이들을 향해서 대단해지지 않아도 된다,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유은실은 오늘날 <강아지똥>의 ‘쓸모’의 의미가 잘못 전달된 이유로 “인간이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구화된다. 부모들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연봉을 가진 삶을 아이에게 주기 위해서 아이의 성장기 자체를 도구화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를 충족시킨 아이들은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성인이 된 것 같고, 충족시키지 못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성장기를 보내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은실 작가는 <멀쩡한 이유정> <독산동 아이들>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아이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써왔으며 2015년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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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똥>은 2017년 권정생 10주기를 맞아 ‘창비어린이’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동화로 처음 선보였다. 아동문학계의 거목 권정생의 대표작 <강아지똥>을 오마주한 작품을 쓴다는 건 쉽지 않았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고통”속에서 쓰여졌다. 유은실은 “사람들이 냄새 난다고 혐오하는 존재로 태어나 꼼짝도 못하고 서서히 굳어서 죽어간다는 것에 이입하는게 힘들었고, 권정생 이름에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송아지똥>은 “나는 똥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골의 빈집 시멘트 바닥에 태어난 송아지똥은 ‘평화를 사랑하는 질경이’라는 뜻의 평이, ‘리듬을 좋아하는 감나무’라는 뜻의 리듬감의 도움으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원작에서 “똥! 똥! 에그, 더러워”라며 강아지똥을 콕콕 쪼고 날아가버렸던 참새는 이번에도 등장해 “송아지가 싸고 간 똥”이라며 송아지똥을 괴롭힌다. 강아지똥은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지만 송아지똥에겐 든든한 친구가 있다. 마당에 사는 풀과 나무, 벌레들은 ‘마당법’에 근거, 남을 괴롭히는 참새를 추방한다. 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과 법과 제도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아지는 싸고 갔을지 몰라도 말이야, 너는 귀하게 태어난 거야”라는 리듬감의 말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송아지똥은 친구 평이의 거름이 되고 싶어하지만, 시멘트 위에 있기에 이마저도 어렵다. 점점 굳어져가는 송아지똥에게 친구들은 “거름이 못 되면 좀 어때?”라고 말해준다.
유은실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를 우리는 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모든 아이들에게 귀한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아지똥>은 권정생의 글을 화폭에 따스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그림작가 정승각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졌다. <송아지똥>은 동양화를 전공한 박세영 그림작가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박 작가는 송아지똥과 질경이, 감나무라는 서로 다른 캐릭터들을 동양화 특유의 따스한 느낌을 살려 화폭에 조화롭게 담아냈다. 유은실은 “제가 권정생 선생님에게 누가 될까 부담스러웠다면, 박세영 작가는 정승각 선생님의 명성의 무게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아지똥> 표지. |
유은실은 권정생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을 수상하고 IBBY(국제아동도서협의회) 어너리스트에 오르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멀쩡한 이유정>, <나의 독산동>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주목받았다. 청소년 소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갑상선 이상으로 인한 그레이브스병을 앓은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장애인이었습니다. 지병으로 제가 일곱살부터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셨어요. 문학은 원래 힘없고 약한 자들의 편이지만, 편견 때문에 고통받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된 뿌리는 아버지에게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다.” 유은실의 수첩 첫 장에 적힌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의 문학 역시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눈길을 주고 귀기울인다. 생전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위해 인세를 쓰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해 쓰도록 남긴 권정생 선생의 모습과도 닿아있다. 10억원의 인세와 유산으로 만든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주는 권정생문학상은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유은실은 “권정생 선생님의 유산으로 문학상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아지똥>은 <강아지똥>을 읽고 봐도 좋지만, <송아지똥> 자체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다. 평이와 리듬감의 유쾌함과 유머 덕분에 송아지똥의 슬픔을 좀더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유은실은 “제 동화를 보면 ‘웃프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유머를 많이 쓰는 건 상처와 슬픔을 아이들의 맨살에 아프게 닿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웃기면서 슬픔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송아지똥>이 오마주한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의 <강아지똥>의 한 장면.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기 위해 민들레를 힘껏 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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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똥>의 주인공 ‘똥또로동’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태어나 거름으로 쓰이지 못한 채 사라진다. 하지만 “쓰이지 못하면 좀 어때?”라고 친구들은 위로를 건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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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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