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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총선 채비` 공공기관장들의 사사로운 예산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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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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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공기관장들의 탈출 '러시'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부분 정권 탄생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자리를 받은 '낙하산' 공공기관장들이다. 재임기간 경영상태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출마 예상 지역에 선심성 혜택을 아낌없이 쏟았던 것으로 나타나 세간의 눈총이 따갑다. 공공기관장 자리가 '총선용 발판'이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19일 퇴임할 예정이다. 2017년 11월 29일 도로공사 제17대 사장으로 취임한 후 1년 이상 임기가 남았다. 이 사장은 퇴임을 앞두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톨게이트 수납원을 모두 직접 고용하겠다고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밝혔다. 지난 8월 대법원 판결에 이어 남은 재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수납원의 요구대로 1심 계류 중인 나머지 수납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겠다는 게 도로공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이 사장이 출마를 염두에 두고 퇴임 직전 '선심성 직고용'을 결정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사장이 전북 남원임실순창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후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데 이런 민심을 달래기 위해 퇴임 직전에 직고용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지역구 출마를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을 풀었다는 비판도 많다. 2664㎡(약 800평) 규모 236억원이 투입되는 남원 지역 춘향 휴게소 설치를 추진했다. 또 남원시와 절반씩 예산을 투입하는 광주~대구 고속도로에 대강하이패스나들목 설치도 이 사장 재임 시절 결정됐다.

공공기관의 사회공헌비용을 자신의 지역구에 집중 집행하는 사례도 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주택금융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으로 주택금융공사의 지역 사회공헌 사업 44건 가운데 54.5%인 24건이 부산 남구를 포함해 집행됐다. 부산 남구는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이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한 곳이다. 이 사장은 19·20대 총선 당시 부산 남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두 차례 출마했다가 낙마한 경력이 있다. 주택금융공사 사회공헌 사업의 절반 이상을 특정 지역에 집행했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김 의원 측 주장이다.

이미 경찰 조사까지 받고 있는 기관장도 있다. 내년 총선 때 전주 완산을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지난 10월 도의원과 시의원 등 전북 도내 유력 인사들에게 명절 선물을 돌린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이 이사장은 "선관위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선물을 보낸 것은 중진공이 그동안 해왔던 고유 업무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선관위는 검찰에 관련 사안을 고발했으며, 검찰은 최근 경찰에 사건을 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이사장은 19대 국회 때 전주 완산을에서 당선됐지만 20대 국회 때는 당 경선에서 낙마한 뒤 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최근 "임명권자, 장관과 상의해 내년 설 정도에 자금 집행을 한 뒤 거취를 정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출마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근 가스안전공사 사장은 충북 청주에 출마할 예정이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2월 가스안전공사 노조로부터 사회공헌자금 3억5000만여 원 중 일부를 충북 도내에서 집중 사용한 의혹이 제기돼 직접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 9월 충북혁신도시 가스안전공사 압수수색과 김 사장 소환 조사 등을 벌여 최종적으로 김 사장과 직원 6명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사장과 같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송치된 직원 1명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다른 직원 5명은 자금을 특정 기관에 우회적으로 지원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노력과 본인의 선거 홍보를 위한 의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가스안전공사는 2017년 3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정진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최소한 선거 등 개인적 일신을 위해 중도 퇴임을 하는 경우 받은 연봉을 반납토록 하는 등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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