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르포] 자살 시도 치료 '정신응급센터' 운영하는 보라매병원 가보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범사업 3개월… 환자 응급실 체류시간 절반 수준으로 줄어
정신과 전문의 24시간 상주…보호자 상담 통해 후속치료 지원

조선비즈

서울형 정신응급의료센터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실 독립치료구역 입구./장윤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지난 8일 새벽 서울 동작구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실.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환자는 서울의 한 대교에서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청년이다. 경찰이 발견해 심야에 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했다.

병원에서는 피검사와 외상 여부 등을 진단했다. 환자는 약물을 복용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전문의는 자해 시도를 한 환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었다. 이후 환자는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약물 치료 조치를 받은 다음 퇴원했다. 환자는 ‘정신응급’ 치료 사례다. 자살시도나 자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초로 ‘정신응급’ 환자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면서 치료하는 시범사업이 보라매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수봉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시도자의 경우 다시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00배 이상 높은 고위험군"이라면서 "응급실에 정신과 전문의가 투입돼 치료 및 면담을 진행한다면 환자의 또 다른 위험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신응급의료센터에 정신과 전문의 2명, 간호사 5명 투입

보라매병원은 서울형 정신응급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지난 3개월간 실시하면서 응급실 풍경이 달라졌다. 병원 4층 연구실과 12층 의사 숙직실에는 정신과 전문의 2명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 대기한다. 전문의 2명은 주당 평균 80~100시간을 병원에서 보낸다. 올 10월부터는 간호사 5명도 추가로 투입돼 센터에 상주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콜이 오면 정신과 전문의는 119구급차나 경찰 차량에 실려온 환자 진료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간다. 정 교수는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과 고통을 겪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마음도 무겁지만, 책임감을 갖고 더 이상의 극단적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 센터의 치료는 내·외과적인 평가 혹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비즈

환자 진료 기록을 보고 있는 정수봉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환자가 실려오면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까.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빠른 치료를 통해 환자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다. 환자는 의료진의 지시를 받고 병상에 눕는다. 이후 병원에서는 최우선적인 치료부터 실시한다. 피검사, 엑스레이 등 내·외과적인 평가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때때로 정신과 진료가 먼저 실시되기도 한다.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입원치료 필요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연계해 준다. 정 교수는 "(정신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정신건강의학과와 응급의학과가 적극적인 협진을 하면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경찰 동행 환자 비율 30% 돌파…병원과 협력 체계 마련

자살은 사회적 문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하는 환자의 경우 병원 이송 전 경찰 등을 통해 발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찰은 환자를 배치할 병원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병원과 경찰이 협력해 치료 환자를 적시에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보라매병원은 서울 관악구, 구로구, 영등포구, 동작구 경찰서 등과 협의해 경찰이 의뢰한 응급 환자에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조선비즈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실 입구./장윤서 기자



서울형 정신응급의료센터 시범사업 시행 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보라매병원의 경우 올 9월부터 11월까지 환자별 평균 응급실 체류 시간이 10시간 10분에서 이후 5시간 58분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정신과 전담 전문의가 투입된 결과다.

경찰과 동행한 환자 비율은 올 9월 9.8%에서 올 11월 30.1%로 높아졌다. 3개월(2019년 9월~11월)간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한 환자는 총 370여명으로, 2018년 동기 대비 약 2.7배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분석·발표한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사후관리사업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응급실로 내원한 자살시도자 1만2268명(전국 42개소)으로 과거 자살시도 경험 유무에 응답한 8572명 중 3016명(35.2%)이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수봉 교수는 "자살 시도자들이 응급실에 오면 단발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보호자 등과 상담해 연계 병원을 알려주고 치료를 꾸준히 받도록 한다"면서 "후속 조치가 필수다. 정신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환자 진료를 위해 응급실에 들어선 의료진./장윤서 기자




장윤서 기자(panda@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