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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목멱칼럼]'야후의 몰락'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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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구글링`(Googling)이라는 용어를 인터넷 검색과 같은 의미로 쓰게 된 것도 벌써 한참 된 일이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업은 야후(Yahoo)였다.

이데일리

1990년대 말까지 야후는 수많은 웹페이지를 일일이 선별·분류하고 디렉토리화 해서 검색자가 찾을 만한 사이트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정성스러운 수(手)작업을 통해 검색 결과의 신뢰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쯤부터는 디렉토리 작업에 아무리 인력을 투입한다 해도 웹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정확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외부 검색엔진 업체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색엔진의 활용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디렉토리 선별·분류 방식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고, 외부 검색엔진 업체들은 일종의 하청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렵 야후는 한 신생업체와 검색엔진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계약이 몇 년 뒤 인터넷 업계의 판도를 뒤바꿀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신생업체는 당시 야후의 최고경영자(CEO) 팀 쿠글(Tim Koogle)과 이름이 흡사한 구글(Google)이었다. 당시 구글은 야후가 정한 최저가 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별다른 재정적 이득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야후의 검색 결과를 실제로 구글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 수도 없었으므로 구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글의 젊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주목한 것은 야후를 통해 유입되는 검색 요청이라는 정보의 가치였다.

이들은 검색엔진을 통한 검색이 증가할수록 구글 시스템의 성능과 정교함이 더욱 향상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나, 야후·라이코스·알타비스타·MSN 등 선발 주자들로 완전히 `레드오션`이 된 검색 시장에서 충분한 양의 검색 요청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야후와의 계약이 아니었으면 10년이 걸렸을 지도 모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유입되기 시작했고, 구글 검색엔진의 성능은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구글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야후를 따라잡았으며, 야후는 뒤늦게 구글 인수를 타진했지만 이미 구글의 성장세는 야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뒤였다. 그때부터 야후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다 지난 2017년 버라이즌에 인수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구글과 야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정보의 가치를 알아본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운명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의 가치, 데이터 산업의 중요성을 논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명 정보 활용의 법제화를 골자로 한 개인정보 관련 법령의 개정안은 발의된 지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고, 최근 국회 정무위의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법안소위 심사조차 보류되고 말았다. 이런 일들을 보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가치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최근 청와대와 과기정통부가 지속적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마이데이터 사업이나 데이터 거래 기반 지원 등 정보 자원의 활용을 위한 각종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의 기반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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