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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임종진의 오늘 하루]친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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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스팔트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바그다드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져서 엉덩이를 델 거라고 농담을 걸던 이라크인 친구 카심. 2003. 이라크.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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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혹시나 내가 화를 입게 될까 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해 당장 떠나주기를 원했다. 2003년 3월18일 저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거리.

“지금 떠난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이대로 남는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로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달라는 그를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심’. 전쟁취재를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라크를 찾은 나에게 그는 현지 안내인이면서 길동무였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에 희끗거리는 반백의 머릿결이 잘 어울리던 카심은 머무는 기간 내내 마치 아버지처럼 사려 깊은 성정으로 내 동선을 살펴주었다. 이런저런 요청을 할 때마다 항상 “No problem!”을 외치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던 그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들었던 카심의 정중하고도 감동스러운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최근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자꾸 보게 된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이라크에서 들려오는 심각한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의 안위가 무척이나 염려스러운 탓이다.

이라크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카심은 모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반전집회에 참석해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하는 거리의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손바닥에 직접 ‘PEACE’라는 글자를 써서 보여주던 모습 또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친구의 무사안위를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꽉 믿어보련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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