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지만, 일본 정부는 사반세기 전인 1993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의 개입을 인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서다. 그냥 정치적 시늉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광범위한 역사적 조사를 진행한 토대 위에서 이뤄진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는 점에서 일본 내외에 큰 울림이 있었다. 물론 자민당 55년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던 가운데 나온 담화여서 일본 내 보수 본류의 진정성 있는 진단과 사과였느냐는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후 역사반성의 견지에서 볼 때 전례 없이 유의미한 담화였음은 분명했다. 한일관계가 냉각된 현시점에서 담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그렇다. 담화는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운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고 명백하게 서술했다. 또한 위안부의 모집도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맡았고, 그 과정에서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랬던 일본에서 2001년에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매년 참배, 황국사관에 기초한 우익교과서의 요란한 등장 등을 거치면서 '고노 담화'의 정신은 급속히 훼손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베 정부에 이르러서는 '고노 담화' 자체를 부정하는 표변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됐던 양국 간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상태이고, 일제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여전히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이런 일련의 관계악화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해석하는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관에서 비롯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학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후손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역사를 가르치자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이웃 나라 한국의 굴곡진 근현대사의 생채기를 또다시 헤집는 일과 다름없다. 일본은 사과는 할 만큼 했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돈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반면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는 피해자가 됐다고 해야 멈추는 것이지, 가해자가 스스로 판단해 충분하다고 손을 털 일은 아니다.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고작 20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슬픈 카운트다운이 종료되기 전에 하루빨리 일본 정부는 역사에 부끄럼 없는 반성과 사과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인류 보편의 인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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