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 신조(왼쪽 두번째) 일본 총리와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19.11.04. since1999@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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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의 유예라는 '깜짝 카드'로 반전을 연출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22일 오후 6시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소미아 종료 유예 사실을 밝혔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WTO(국제무역기구) 제소 절차 일시정지 방침도 함께였다. 지소미아 종료 시한(23일 0시)까지 6시간을 앞두고 나온 발표였다.
청와대가 표면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입장을 꾸준히 유지해온 것과 차이나는 내용이다. 21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직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조치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도 "일본의 아베 정부가 본인들의 잘못은 전혀 얘기하지 않고 완전히 백기를 들으라는 식으로, 이번 기회에 완전히 굴복시키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며 "(협상에) 진전이 정말 안 된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일본과의 협상이 지속됐다.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강 수석도 "외교부 라인은 마지막까지 일본하고 대화하고 있다"며 "종료되지 않는 쪽과 종료가 불가피한 쪽을 다 열어놓고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며칠 동안 유예 여부를 집중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NSC 상임위에서 역시 겉으로는 '종료'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대화의 문'은 열어놨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NSC 상임위원들은 한일 간 현안 해결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종료'를 직접적으로 암시하지 않는 것을 통해 여지를 남겼다.
온도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전 중 충남 천안 MEMC코리아 실리콘 웨이퍼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반도체 제조 강국 대한민국을 아무도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하던 시각에, 정치권에서는 "우리 정부가 유예 카드를 택할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NSC 상임위가 진행되며 이같은 전망에 더욱 힘이 실렸다. 당초 지소미아 종료로 '직진'할 경우 추가 논의를 최소화하고 조기에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 이틀 연속 NSC 상임위가 소집됐다는 것은 복잡한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이날 NSC 상임위에는 문 대통령이 임석하기도 했다. '종료'보다 '유예'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막판 협상에서 일본 측이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전략물자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불화수소)에 대한 수출규제를 '재검토'할 뜻을 피력한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이 그동안의 태도와는 다르게 '과장급 준비회의 후 국장급 대화' 등 협상을 할 뜻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일본이 과거 미국의 중재안인 ‘스탠드 스틸’(stand still, 현상동결)도 물리쳤던 것과 차이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일관계 복원 의지도 분명했다. 최근 태국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손을 잡아 끌어 대화를 나눴던 문 대통령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측이 대화에 응할 기색을 보이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한일 우호협력관계가 정상복원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의 관계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꾸준히 지소미아의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문 대통령이 11월 들어 미국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을 연속으로 접견하기도 했다. 한미 방위비 협상 등이 현안으로 남아있는 시점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강행하는 게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승부수는 일본 측이 우리의 '조건부 유예' 카드에 호응해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의 실질적 조치를 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다음달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이 유력하기 때문에 연말에 '빅딜'을 노리는 게 이상적이다.
일본 측이 시간만 끌 경우 상황은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의 상당기간 지속은 허용할 수 없다"며 "7월1일 이전의 상황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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