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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부모의 출발점이 자녀의 도착점” 신 엘리트들이 사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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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따끈따끈 새책] ‘특권’…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

머니투데이

미국의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스쿨. 500명 남짓의 부유층 자제들은 800만㎡에 달하는 이곳 부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4만 달러(4600만원), 학생 1인당 책정된 학교 예산은 8만 달러, 한 학생당 기부금은 100만 달러에 달한다.

가난한 파키스탄 이민자였지만, 외과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덕에 저자도 이 사립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하지만 졸업한 후 지울 수 없는 의문이 생겼다. “왜 누구는 이런 학교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 누구는 죽도록 노력해 성취해야 하는가.”

의문을 풀기 위해 졸업 후 9년 만에 선생으로 모교에 돌아와 관찰하고 추적하고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부모의 출발점이 결국 자녀의 도착점을 말해 주는 훌륭한 지표라는 사실 말이다.

‘귀족제’ 관념 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전받는 시대에, 엘리트들은 어떻게 여전히 그들의 위치를 대대손손 물려주는 일종의 ‘귀족’처럼 보일까. 주변 세상은 변한 것처럼 보이는데, 왜 이들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일까.

저자에 따르면 세인트폴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것은 ‘위계의 존재’다. 입회식에서부터 교직원과의 관계, 선후배 관계까지 일상사는 온통 위계를 몸에 익히는 과정들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이 이 같은 위계질서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익혀 나간다.

학생들은 또 선생과의 복잡다단한 밀도 높은 관계를 통해서도 위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법을 배운다. 자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과 어떨 때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또 어떨 때는 그 선을 살짝 넘나들면서 막역하게 지내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청소나 식당일을 하는 교직원처럼 불평등을 상기시켜 주는 ‘증거’에 대해선 무시로 일관하며 ‘위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지만, 발달장애 교직원처럼 더 이상 출세하지 못하는 명백한 ‘설명’ 앞에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학교 안의 이런 다양한 관계들을 경험하며 위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관계를 넘나드는 방법을 체화한다.

구 귀족과 달리, 신 엘리트들은 지식, 문화, 인맥 주변에 장벽을 두르고 고급문화를 구분 지으며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폐쇄적 엘리트들이 아니다. 그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고급 오페라를 즐기면서도 랩 음악을 마다치 않는 개방성과 문화적 잡종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자본을 물려받은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로 설명한다. 공장을 소유하느냐로 차이를 두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월급 받기 위해 출근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스스로 우리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까.

우리는 흔히 개방성이 평등과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최고 엘리트 기관에서 흑인과 여성 모두 눈에 띄게 증가한 수를 보고 평등의 지표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하지만 상위층의 소득 증가를 분석해 보면 오히려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25% 증가했지만 상위 5% 가계소득은 68%, 상위 1%는 323%, 최상위 0.1% 492% 증가했다. 특히 어느 때보다 소외계층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중간 소득’ 구간에 위치한 학생들은 미국 사회 전체로 놓고 보면 상위 5% 소득 수준에 해당한다.

저자는 이런 역설에 대한 해답도 학교에서 찾는다. 학생들은 위·아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위계를 감추지만, 그 사다리 위에서 성취하는 것들은 온전한 자기 노력의 결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은 위계를 보존하되,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특권의 기술, 즉 ‘편안함’을 체화한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재탄생한다”고 꼬집는다.

‘노력하는 것만이 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고집하기보다 ‘노력하면 앞설 수 있다’는 믿음 정도로 자연스럽게 특권을 체화하는 것이다.

공식 자리에서 편안하게 정장을 소화하는 법, 낯선 사람들과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법, 선생님과 식사하면서 불안해하지 않는 법을 달달 외워서 실천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런 행사들이 별것 아니라는 걸 배우면서 엘리트로 진화한다.

자신의 특권과 부를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신 엘리트들은 비로소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내 능력 때문이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 아니야. 너희의 실패는 너희가 이런 사회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저자는 신 엘리트의 ‘공부’ 편에서도 성적이 아닌 모호한 인문학적 감성으로 ‘인재’를 구분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큰 질문을 던지고 이것저것 짜깁기해 이야기하는 법, 언저리를 돌며 이야기하는 영리하지만 공허한 방식 등으로 아이비리그 관문을 ‘쉽게’ 통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 엘리트적 태도의 핵심인 편안함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신흥 계급들이 숙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엘리트가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싼’ 자연스럽고 반복적인 경험을 일반인이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공정 사회의 역설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권=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 강예은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420쪽/2만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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