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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승만·박정희 비판 다큐 '백년전쟁' 제재 부당…대법 원심 판결 뒤집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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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the L] 대법,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최초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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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 김지영 감독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2회 국민참여재판 오후 속개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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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는 부당하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2008년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방송의 공정성·공공성을 심의하는 대상 프로그램의 범위,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의 의미, 방송의 사자 명예존중 의무에 관해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소송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방송이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방송은 시청자의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된 유료의 비지상파 방송매체 및 퍼블릭 액세스 전문 채널을 통해 방영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라며 “무상으로 접근 가능한 지상파방송이나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 또는 보도 프로그램과 달리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방송의 공정성·공공성 심의대상 프로그램이 ‘보도 프로그램’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보도 프로그램이 그 요구되는 정도가 다른 방송 분야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이어 대법원은 △방송의 ‘객관성’이란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실을 다뤄야 한다는 것 △방송의 ‘공정성’이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 △방송의 ‘균형성’이란 관련 당사자나 방송 대상의 사회적 영향력, 사안의 속성, 프로그램의 성격 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평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 대법원은 이 방송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면서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후대에 의한 평가가 따르고 이러한 평가는 각자의 가치관이나 역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난다”면서 “역사적인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명예훼손과 관련해서 대법원은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공인에 대해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관련 법 상의 제재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은 “명예훼손과 모욕적 표현은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면서 “방송 내용은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등의 자료에 근거한 것이고 방송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살펴볼 때 그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방송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며 제재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엔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6명)이 있다. 이들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을 취사선택해 방송내용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이 방송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소수에 그쳤다.

다수의견에 대해 김재형 대법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행위, 특히 내용에 대해 행정제재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 억제돼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자율심의체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우리나라의 방송심의제도 하에서 국가기관이 방송내용에 대한 규제를 하더라도 이는 선정성, 욕설 등에 한정해 규제 범위가 포괄적으로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냈다.

김선수 대법관과 김상환 대법관 역시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내고 “이 재판은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의 보장 정도’ 또는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의 한계와 정도’가 판단되는 재판이라는 점에서 법원의 입장에서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면서 “공정성 등 유지의무 위반 여부는 공정성 등의 개념이 보유하는 최소한의 본질적 징표를 갖추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은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내고 “사자는 자신의 인격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다루는 보도에 대해 직접 반박할 수 없으므로 사자의 인격을 포함한 특정인의 사생활에 관한 부분을 방송할 경우에는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준수의무와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보다 충실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며 이 방송에 대해서는 “정치적, 정책적 과오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로 개인의 인격을 일방적,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시민방송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진보성향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이 전 대통령이 친일·기회주의자로 사적 권력욕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과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로 미국에 굴복하고 한국 경제성장 업적을 가로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방통위는 2013년 8월 해당 프로그램이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며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징계 및 경고 조치 등 제재를 가했고, 시민방송은 재심이 기각되자 같은 해 11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했고, 전체 관람가로 두 달에 걸쳐 55회 방영해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2심 법원도 "해당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정도로까지 나아갔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시민방송의 불복으로 2015년 8월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은 당초 대법원 1부에 배당됐으나, 이렇다할 진척이 없다가 3년 5개월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한편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2월 기소된 이 다큐멘터리 감독 김모씨와 프로듀서 최모씨는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검찰과 김씨 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mk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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