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창사특집 다큐, 싱글맘 치타 '사만다'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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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타, 파멸 당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이프 오브 사만다
순간 최대 속력 110㎞/h. 단 2초 만에 70㎞/h 이상 끌어올리는 엄청난 가속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 바로, 치타입니다. 등뼈를 활처럼 굽혔다가 스프링 튕기듯 초원을 달려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자면, 멋있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아름다운' 이 모습이, 어쩌면 역설적으로, 냉정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타의 처절한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 생존에 극히 불리한 신체조건
치타를 포함한 '고양잇과 동물'은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챕니다. 그리고 목을 물어뜯어 먹이를 사냥합니다. 강력한 턱과 이빨로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먹이를 이렇게 압살하기에 치타의 얼굴과 이빨은 몸집과 비교하면 너무 작습니다. 이른바 '원샷 원킬'이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요. 먹이를 한 방에 제압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야생에선 사실상 사형 선고에 가까운 가혹한 조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치타는 머리마저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동물의 지능을 나타내는 척도 가운데 '대뇌비율(EQ;Encephalization Quotient)'이란 것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뇌가 체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인데, 대체로 영리한 동물일수록 이 EQ가 높게 나타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뇌는 참 할 일이 많습니다. 당장 생존을 위해 숨을 쉴 수 있게 호흡을 조절해야 합니다. 심장이 제대로 뛰는지도 살펴야 하며, 체온이 적절하게 유지되는지도 챙겨봐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업무 기능 가운데 하나가 판단하고, 생각하고, 또 적용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입니다. 즉, 뇌의 여러 기능 가운데 이 '사고'의 영역이 얼마나 큰지를 보는 것이 EQ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치타의 EQ는 대뇌비율은 침팬지나 돌고래 그것의 절반도 안 됩니다. 치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상대적으로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치타는 지형지물이나 장애물 등을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도 상대적으로 단순합니다. 야생에서 생존하기에는 몹시 불리한 조건입니다.
● 달리기, 달리기, 그리고 또 달리기
이 같은 악조건에도 치타는 오늘 이 순간에도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강점을 극대화하며 진화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강점을 극대화한 진화의 핵심은 바로 <달리기>입니다. 치타는 오직 달리기에 모든 걸었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에 당당히 맞서 왔습니다.
폭발적인 가속도를 내기 위해 치타는 몸의 군살을 완벽하게 줄였습니다. 근육과 뼈는 더 강해졌고, 가슴은 깊어졌으며, 폐도 더 커졌습니다. 그 덕에 다량의 산소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짧은 시간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호흡·혈액 순환계가 진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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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방식도 바꿨습니다. 치타는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마치 '갯과 동물'처럼 발톱을 일직선으로 노출해 걷습니다. 발바닥 마찰력을 높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비록 나무에는 잘 못 올라가게 됐지만, 대신 빠른 가속과 순간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마치 발레리나가 토슈즈를 신은 것처럼 발가락 끝으로 달리면서 보폭도 넓혔습니다.
이렇게 습득한 최고의 달리기 실력을 토대로, 치타는 전매특허의 사냥법도 개발했습니다. 달려드는 힘을 최대로 활용해 먹이의 숨통을 꽉 물어 질식시키는 새로운 사냥 기술을 터득한 것입니다. 먹이의 숨통을 끊기에 부족한 작은 이빨과 턱을 최대 장기인 달리기 실력으로 보완한 것입니다.
● 넓은 초원, 단 하나의 종
처절하다 싶을 정도의 노력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짧은 지구력입니다. 치타가 최대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300m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체온이 40℃ 이상 올라갑니다. 이렇게 높은 체온이 일정 시간 이상 이어지면, 몸 안에 있는 단백질이 변형되면서 생명이 위독해집니다. 그래서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달리기를 멈추고 헐떡이면서 체온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치타는 이런 단점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넓은 시야로 짧은 지구력이라는 단점을 극복해간 것입니다. 100여m 앞 먹이를 쫓는 다른 고양잇과 동물들과 달리, 치타는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먹이까지 사정권에 둡니다. 그리고 살금살금, 조용히, 은밀하게 50m 언저리까지 접근한 뒤, 폭발적인 스피드로 순식간에 먹이를 덮칩니다. 20초, 길어도 1~2분 안에 생존을 위해 승부수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치타는 오직 단 하나의 종(Acinonyx jubatus)만 생존해 있습니다. 오직 달리기에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을 걸었기에, 넓은 평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폭발적인 달리기가 가능한 평원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었고, 이렇게 제한된 지역 안에서만 생활하며 다른 종으로 분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인 호랑이가 아시아에만 5종류가 서식하는 것을 고려하면, 단일종이란 것은 치타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오직 달리기에만 천착하며 생긴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눈 안쪽의 검은 줄,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런 우여곡절을 다 겪고 마침내 사냥에 성공했다고 해도, 치타는 좋아할 틈조차 없습니다. 그 틈 사이로 다른 육식동물들이 바로 치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치타는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다른 포식동물은 물론, 심지어 무리지어 다니는 비비 원숭이에게도 먹이를 빼앗기곤 합니다. 나무에 먹이를 저장해놓고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는 표범이나 무리에서 음식을 지켜주는 사자와 비교하자면, 비참하고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먹이가 죽고 나면 가급적 서둘러 먹기 시작하는 습관도 그 때문에 생겼습니다. 언제, 어떤 포식자에게 먹이를 빼앗길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치타는 대형 포식자를 피해 사냥하는 법도 터득했습니다. 주로 밤중에 사냥하는 사자 등과 달리, 경쟁자들이 잠자고 쉬는 낮에 사냥에 나서는 것입니다. 치타를 상징하는 얼굴의 두꺼운 검은색 줄도 그 때문에 생겼습니다. 검은 줄은 두 눈 안쪽에서 입 가장자리로 나 있는데, 이 줄은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야구선수들이 낮 경기할 때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눈 밑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밝은 대낮에 사냥하기 최적화된 진화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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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맘' 치타, 그리고 <모성애>
생존에 불리한 신체 구조와 다양성을 상실한 유전성. 그럼에도, 치타는 자신을 스스로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강점을 계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그 생존 그리고 진화를 위한 노력의 정수는 바로 <모성애>입니다.
모계 사회를 이루고 사는 치타는 기본적으로 암컷이 새끼를 홀로 키웁니다. 번식이 끝나면 수컷은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출산과 양육, 교육 등 생의 대부분을 오롯이 암컷 혼자 책임지고 살아갑니다. 암컷 치타는 태어나면서 이른바 '싱글맘'의 삶을 운명처럼 타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미 치타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어미 치타는 생존을 위해 사냥도 혼자 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새끼들도 지켜내야 합니다. 새끼가 어릴 때는 등에 솜털이 나 있는데 이것은 수풀 사이에 숨겨놔도 다른 동물의 눈에 띄게 하지 않도록 진화한 결과입니다. 이 때문에 새끼가 있는 치타 어미는 잡은 먹이 곁에서 숨을 돌리고, 주변을 경계하는 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씁니다.
물론, 어미 혼자 모든 것을 다 책임지는 삶이 어찌 녹록할 수 있을까요? 가장 치명적이지만 일상적인 고통은 새끼를 잃는 것입니다. 새끼 치타의 사망률은 매우 높습니다. 생후 몇 주 안에 죽을 확률이 90%에 달합니다. 새끼 치타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은 역시 대형 포식자입니다. 새끼 치타 사망 원인 가운데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리카온, 독수리 등에게 잡혀 먹는 비율이 78%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대형 포유류 가운데 이처럼 새끼 사망률이 높은 종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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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만큼 힘들고 어려운 육아
설사, 새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지켜냈다고 해도, 양육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치타는 사냥한 뒤 다른 포식동물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먹이를 가급적 빨리 먹습니다. 그런데 새끼는 입이 작은데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또 먹다가 놀거나 쉬기도 해서 먹는 시간도 그만큼 깁니다. 생명을 지켜주기도 어렵지만 먹여 키우는 것도 그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끼가 있는 어미 치타는 일반적인 치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먹이를 먹습니다. 연구 결과, 이들 어미 치타는 새끼 안전을 우선으로 확보한 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먹이를 먹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새끼를 위해서는 먹이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새끼를 잃느니 먹이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요. 연구자들은 "치타가 대형 포식자 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모성애적 유연성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치타를 비롯한 동물들도 새끼를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나 평안,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경이로운 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위대하다.' 이 말은 어쩌면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모성애. 이 진리는 치타라고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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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치열하고 위대한 노력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야생에서 치타 평균 수명은 7살이 채 되지 않습니다. 사자 수명이 15살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짧습니다. 치타가 동물원에서 평균 12살 정도 사는 것을 고려하면, 야생이란 곳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들고 고단한 곳인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치타는 힘이 약하다고, 이빨이 작다고, 지구력이 짧다고, 먹이를 쉽게 빼앗긴다고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라며 신세타령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단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오랜 세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모습을 찾아 적응하며 진화해왔습니다. 치타의 뛰어난 달리기 실력도, 지고지순한 모성애도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려는 피나는 노력에서 나왔습니다.
약점에 갇혀 푸념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장점에 집중하며,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살아온 치타. 그런 점에서 치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통찰력은 간명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 주저하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치타의 번성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치타보다 더 극적이고, 더 치열하며, 더 진정성 가득한 시청자 여러분의 삶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한세현 기자(수의사·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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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창사특집 <라이프 오브 사만다>
1부 Jambo Afirica / 2019년 11월 24일(일) 밤 11시 5분
2부 Life is not easy / 2019년 11월 29일(금) 밤 10시
3부 Never give up / 2019년 11월 30일(토) 밤 10시
4부 Remember me / 2019년 12월 1일(일) 밤 11시 5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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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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