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7)
우리에게 꽤 친숙한 오페라인〈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베르디가 발표한 작품입니다. 질투 많은 귀공자와 사교계 여인과의 사랑에 남자의 아버지가 끼어들어 방해하고 결국 비극으로 마감되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랍니다.
18세기 말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사회의 새로운 주역이 된 부르주아계급은 새로운 사회규범도 만들게 됩니다. 그들에겐 미모와 교양을 갖춘 사교계의 여성을 후원하면서 함께 지내는 것이 묵인되었지요.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유행했던 파트너 여성이 바로 ‘코르티잔’입니다. 그들은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소양을 지니고 양반들과 교유를 한 조선시대의 황진이와 유사하다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남성 위주의 사회규범에 대해 문학을 중심으로 비판이 일었는데,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인 뒤마 피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부모의 반대 때문에 사교계의 여인과 헤어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 〈동백아가씨(La Dame aux Carmelias)〉를 출판합니다. 그 소설이 연극으로 공연되어 속칭 대박을 치게 되지요.
화제가 된 그 연극을 보고 작곡가 베르디가 큰 감명을 받습니다. 그 역시 사랑하고 있던 유명 소프라노가 정숙치 못한 여인이라는 이유로 주위의 결혼반대에 부딪히고 있었거든요. 부르주아의 위선과 편견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합을 정당화하려는 듯 베르디는 자신의 영혼과 모든 역량을 담아 작곡했습니다.
비올레타는 타고난 미모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파리 사교계의 주역이 된 최고의 코르티잔입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외롭게 살아왔고요. 그 때문인지 그녀는 잊혀짐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사실 잊혀진 사람이 제일 비참하다고 하잖아요? 그녀 앞에 파리의 사교계를 맴돌던 부르주아 가문의 알프레도가 나타납니다. 그녀 때문에 딸의 혼사를 망칠까를 우려하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끼어들면서 비극의 씨앗은 움트게 되지요.
한 사람은 '사랑'을 다른 이는 '쾌락'을 노래하는 '축배의 노래'. [사진 Fli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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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을 암시하듯 첼로의 저음이 사랑의 테마를 연주하며 막이 오르면, 화려한 파티 중입니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유명한 2중창 ‘축배의 노래’를 부르지요. 그들은 밀당을 하듯 알프레도는 ‘사랑’을 위해, 비올레타는 ‘쾌락’을 위해 축배를 들자고 합니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비올레타는 자신은 사랑을 모르니 다른 여자를 찾으라며 거부하지만, 거듭되는 그의 고백에 동백꽃을 주며 꽃이 시들면 다시 찾아오라고 합니다. 다음날이면 시들텐데 말이죠.
참, 동백꽃을 보려면 제주 올레길 5코스중 위미항 근처의 동백꽃군락지가 좋아요. 바로 근처에 수지 주연의 모 영화 세트를 개조한 카페도 있고요. 평탄한 올레길과 추억을 불러오는 풍경까지, 최고의 코스라고 추천 드립니다.
혼자 남은 비올레타는 혼란스럽고 심란합니다. ‘1년동안이나 자기를 사랑해 왔다는 남자, 그 마음이 진심일까? 그리고 내게 아픔만 주었던 사랑이란 것을 내가 할 수가 있을까?’ 흔들리던 비올레타는 다시 정신을 차리며 자신에게 사랑은 고통임을 떠올리고는 언제나 자유롭게 쾌락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다짐합니다. 허나, 흔들리지 않으려는 그녀의 애틋한 마음에 알프레도의 진실한 사랑노래가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2막에서 비올레타는 이미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교외에 멋진 집을 마련해 알프레도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경제 관념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그 대신 패물을 팔아가면서요. 알프레도가 없는 사이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나 그녀를 압박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천사 같은 딸이 아들의 행실 때문에 혼사가 깨지게 되었다며 아들과 헤어지라는 겁니다. 그녀가 혼사 때 잠시 떠나 있겠다고 하지만, 그는 영원히 이별하라고 재촉합니다. 애원하던 그녀는 결국 제르몽에게 딸처럼 한 번만 안아달라고 한 뒤, 알프레도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편지를 쓰고는 사라집니다.
거짓 이별을 통보한 비올레타를 모욕하는 알프레도. [사진 Fli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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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통보 받은 알프레도는 속 좁게도 그녀에 대한 분노가 폭발합니다. 파티장으로 비올레타를 찾아가, 많은 돈을 그녀에게 화대처럼 뿌렸답니다. 충격을 받은 비올레타는 기절하고, 파티장의 모든 사람들이 연약한 여인을 모욕한 그를 경멸하고요. 마침 파티장에 들어오던 아버지 제르몽도 못난 아들이라며 그를 꾸짖는답니다. 아~ 뜨거운 가슴뿐인 질투쟁이 알프레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폐병이 심해진 비올레타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창 밖에는 사육제 축하 음악이 떠들썩한데 말이죠. 그녀는 겨우 조금 남은 돈의 반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녀에게 당부합니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어려운 이들을 좀 더 사랑하게 되는가 봅니다.
병상에서 제르몽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데, 늦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며느리로 맞이할 것이며 곧 알프레도와 함께 찾아오겠다는 내용도 있고요. 허나, 너무 늦었음을 직감한 그녀는 아리아 ‘안녕, 지난날이여’를 안타깝게 부른답니다. 그녀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었던 알프레도의 사랑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지요. 결국 뒤늦게 돌아온 알프레도의 품 안에서 자신을 기억해달라며 숨을 거둡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원작자와 오페라 작곡가 모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투영하여 더욱 감동적인 오페라가 되었답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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