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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팀장칼럼] 코닥이냐 인스타그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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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지만, ‘디지털’이란 기하급수적(exponential)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파산했죠. 반면 대학생들이 창업해 직원 수 12명에 불과했던 인스타그램은 설립 2년여 만에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 가치로 페이스북에 팔렸습니다. 파괴자(disruptor)가 될 것인지 파괴당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4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19’ 기조연설 차 방한한 다니엘 크래프트(Daniel Kraft) 싱귤래리티대학 의대 학장의 말이다. 구글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싱귤래리티대학이 어떻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싹트게 하고 열매 맺도록 만드는지 묻자 "기하급수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며 코닥과 인스타그램의 예를 들었다. 현재의 안정적인 수익만 좇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로 세상은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기술의 발전, 인터넷의 등장으로 글로벌 경쟁 시장이 출현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 빨라지는 추세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00년도에 미국 포천지(誌)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합병, 인수, 파산 등으로 지금 사라지고 없다. 1975년 포천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기업의 평균 수명은 75년이었지만, 지금은 불과 15년 목록에 올랐다가 자취를 감춘다.

넷스케이프 개발자이자 유명 벤처 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고, 이는 사실이 됐다. MS,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시가총액 상위권을 점령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시가총액 1위의 영광을 누렸던 제조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순위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하지만 이 구도조차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AI(딥러닝, 심화 학습)가 소프트웨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운다’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즘 주목받는 클라우드 분야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클라우드 업체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강자로 군림해온 오라클의 위상을 약화하며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이번엔 이용자 기기 근처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에지(edge·가장 자리) 컴퓨팅 기술이 부상하며 경쟁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은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건 이런 원칙이 비단 기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행정부, 법안을 발의하고 심의하는 입법부도 유연한 사고를 갖고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업종·직무·사업 구조 등 기업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1년 동안 방치된 ‘데이터 3법’ 등을 보면 정부나 국회가 오히려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여겨진다.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드론(무인기) 산업이 멈춰 있는 사이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물류 운송업체 UPS에 드론 배송을 허가했고, 미국 대형 약국 체인 CVS와 손잡고 드론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다. 한국에선 원격 의료가 불법이지만, 중국에선 2016년에 전면 허용돼 빠르게 발전 중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혁신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기업들이 코닥이냐 인스타그램이냐의 갈림길에서 매 순간 지독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정부와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변화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앞장서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모든 규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들도 미래 기술, 글로벌 경쟁 상황을 빠르게 익혀야 하고 필요하면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 국가 발전 전략 차원에서도 혁신 장려 방안을 정책 최우선 순위로 올리고, 기업가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 줘야 한다.

기업이 망하면 가계가 어려워지고, 국가도 위기를 맞게 된다. 변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단순히 몇 개 기업만 도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코닥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박원익 통신미디어팀장(wipar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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