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기범 기자 |
"제가 요즘 손이 다 아픕니다."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지난 17일 돌연 한국당 구성원들을 비판하며 불출마 선언을 하자 만나는 시민들이 격려를 담아 힘을 실은 악수를 보내왔다는 얘기다.
김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공무원들마저 ‘응원한다’며 갑자기 악수를 청하더라”며 “바깥 민심과 한국당 내부 인식이 괴리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 파장은 상당하다. 당내 여론은 차갑다. 그도 예상했던 바다. 김 의원은 “특별한 게 아니라 상식을 말하는 것이 충격으로 느껴지는 게 한국당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20대 총선 공천을 보수당이 무너지기 시작한 결정적 지점을 진단했다. 그 이후 “당의 건강한 목소리가 죽었다”는 게 김 의원의 진단이다. 해법으로 신당 창당 등이 아닌 당 해체를 주장한 것도 진단에 따른 자연스런 처방이다. 김 의원은 “당 지도부와 당 주류가 권력을 내려놓고 권력의 ‘진공상태’가 되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임계점이 왔다”며 “당에 쌓인 문제 인식이 그동안 언급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김 의원을 만난 이날 공교롭게도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정치권에서는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않아야 할 일”(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보기 역겨운 구태”(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김 의원 역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짧은 답변 앞에 한숨이 길었다. 두어 차례 한숨을 뱉은 김 의원은 “그 이상 다른 말을 드릴 것이 없다”면서도 “바둑도 몰리면 악수(惡手)를 계속 두지 않느냐”고 말했다. "건강 상하시면 안 될텐데"라며 '목숨을 걸겠다'는 황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불출마 결단을 내린 직접적인 계기는.
▶당에서 일어난 4개 정도 사건이 누적이 됐다. 그 중에도 쇄신 요구를 하며 당직을 사퇴한 30·40대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두고 지도부가 ‘주동자를 색출하라’고 했던 것이 컸다. 너무 상식 밖의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그러면 대표가 아니더라도 사무총장이 불러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듣는 것이 상식적인 대응 아닌가. 청년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총선기획단 세미나 이후에도 당에서는 ‘충격받았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15일 김성찬 의원의 불출마 등을 보고 최종 결심했다.
-당내 반발이 크다.
▶제가 메시지를 낼 때 누굴 공격하고자 하는 뜻이 전혀 없었다. 누가 누구를 공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제가 누구를 흠집내서 일을 풀어가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제 인식을 얘기한 것이다. 모두의 책임이고 모두가 불출마의 형태로 책임지자는 제안이었다. 당의 ‘투 톱(2 Top)’인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금 직책에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다. 불출마를 선제적으로 하면 거기에 리더십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두 대표만 불출마 선언을 해도 한국당 지지율이 5~7%는 단번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 대표의 단식은 어떻게 보나.
▶하…(약 10초간 한숨.) 일단 공식적인 답변은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 이상 다른 말을 드릴 것은 없다. 건강 상하시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일각에서는 황 대표의 보수통합 메시지 등 잇달아 나오는 메시지들이 뜬금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둑도 몰리면 악수를 계속 두지 않나. 입문한 지 1년이 안 된 황 대표가 감당하기에 정치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
-당에 일종의 임계점이 온 것인가.
▶임계점이 왔다고 본다. 체제의 공고함에 눌려 그동안 당 내에서 비판을 제대로 이야기 못 하다가 터지는 것 같다. 당 내 ‘통합과 전진’이라는 모임에서도 여의도연구원장 사퇴 요구 성명을 내려고 했는데 이름 빼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못했다고 한다.
-지난 전당대회 때 당원들의 선택이 달랐다면 지금 상황이 달랐을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됐다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그 때는 다들 ‘안정’에 대한 갈증이 높아 황 대표를 선택했다고 본다.
-그래도 황 대표를 2월 전당대회에서 뽑았다. 10월 ‘광화문 집회’에서 투쟁 동력을 회복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자체로 동력을 만든 것으로 있겠지만 제한적이었다. 동력은 시민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10월3일, 10월9일 광화문 집회는 한국당이 한 게 아니다. 한국당은 시민들의 흐름에 올라 탄 것이다. 시민들이 불을 붙였다. 한국당이 없어져야 불이 잘 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이) 자꾸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황 대표 말고 대안을 당장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진공 상태’가 되면 새로운 질서는 분명히 만들어진다. 지금 상태가 유지되며 장기간에 걸쳐 소멸하는 길을 걷는다. 나는 바닥을 빨리 치고 그 동력으로 새로운 인물로 채우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불출마 선언 이후 제게 ‘세력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제안을 했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세력화가 오히려 당을 망칠 수 있다. 또 친박·비박 같은 계파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양식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자각해서 각자 자기 자리에서 행동하면 된다.
이미 시민들이 행동하고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시민들이 일할 시간에 월차 내고 와서 발언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도부가 그동안 못 알아 듣다가 갑자기 쇼크 받는 것이다.
-잠시 몸 담았던 바른정당이 지금 바른미래당을 거쳐 다시 신당을 창당하려고 하고 있다.
▶신당 창당 시도는 가장 낮은 방식이다. 정상적 판단 능력이 사라진, 퇴화된 존재로서 원시적 생존 본능을 이어가는 정도가 된다.
-왜 이런 상황이 됐다고 보나.
▶18대와 19대 총선 때 공천 학살이 있었다. 20대 때 나름 친박 소장파를 학살했다. 당의 건강한 목소리를 죽인 거다. 현실 인지 능력이 그때 제거됐다. 똑같은 소리만 서로 하고 있으니까 바깥 세상과 완벽한 괴리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현 시스템대로면 21대 총선 준비도 비슷할 것으로 본 것인가.
▶현 구조하에서 현역의원 50%를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80%니 90%니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얘기다. 근본적 해법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에 다 정리를 해야 한다.
-젊은 세대 등 밖에서는 한국당에 대한 비호감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불출마 선언문에 모든 표현을 다 넣었다. 한국당은 조롱 받는 것을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한다.
-지난 19일 청년들과 대화에서 황 대표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내가 한 얘기가 같은 것인데. 당 의원들이 제 말에는 욕하면서 청년이 말하니까 욕을 안한다.(웃음) 똑같은 얘길 한 것인데.
-내년 총선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집이나 텐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없애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 85년 신민당 때처럼 되겠죠.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내년 5월 이후는 어떻게 하나.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경영하던 회사(동일고무벨트)로 돌아가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불출마 선언 이후 지도부에서 직접 전화한 적은 없었나.
▶없다. 당직자들이 진위여부 파악차 전화 오긴 했다.
-밖에서는 응원이 있는데 안에서 반발이 크다.
▶최근 토론회 참석 때문에 의원회관에 가면 토론회에 온 시민들이나 심지어 공무원들까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악수를 그렇게 세게 해온다.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저를 보고 인사를 하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바깥 민심은 확실히 당 지도부와 괴리가 있다.
대담=박재범 부장, 백지수 , 강주헌 기자 100js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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