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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카운터어택] 기업은 떠나고 남은 자리엔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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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최근 하나금융그룹이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을 인수했다. 대전은 1997년 창단한 국내 첫 시민구단이다. 모기업이 있는 팀에 비해 여러모로 넉넉하지 못했다. 게다가 구단주 격인 지자체장이 지방선거로 바뀔 때마다 인사 등 후폭풍에 시달렸다. 하나금융그룹의 인수로 대전 사정은 크게 나아질 거다. 넉넉한 구단 살림이 좋은 성적을 보장하지는 않아도, 좋아질 가능성은 높인다.

대전과 크게 대비됐던 팀이 수원 삼성이다. 1995년 창단한 수원은 삼성전자가 모기업이었다.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수원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내내 국내외를 호령했다. K리그와 컵대회 등 국내 대회 우승만 18차례.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전신)도 두 차례 우승했다. 그랬던 수원의 모기업이 2014년 제일기획으로 바뀌었다. 2011년 400억원(모기업 지원액 317억원, 같은 해 대전 80억원)을 찍었던 구단 예산이 점차 급감했다.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하나금융그룹의 축구단 인수 대상 후보 중 하나가 수원이라는 거다. 양측이 접촉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고, 결국 하나금융그룹은 대전을 선택했다. 재밌는 점 하나. 대전은 2001년 FA(축구협회)컵 우승팀이다. 대전이 따낸 유일한 타이틀이다. 정규리그와 달리 FA컵에선 약자의 반란이 간혹 있다. 토너먼트제라 얇은 선수층으로도 해볼 만해서다. 공교롭게도 올해 FA컵 우승팀이 수원이다.

삼성은 한국 스포츠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육상·빙상 등 기초 종목은 삼성이 떠맡았다.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인기 종목도 삼성에 많이 기댔다. 그런 삼성이 스포츠를 접고 있다. 이번 수원 매각 시도처럼 그 기조는 강화되는 중이다. 다른 종목이나 구단에 비슷한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오랜 세월 한국의 국제대회 효자 종목 하키가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그것도 남녀 모두. 동반 탈락은 40년 만이다. 하키가 내리막길을 걸은 건 필립스가 손을 떼면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처럼 기업에 스포츠 지원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업은 떠나고 남은 자리엔 한숨만 그득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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