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행운이 많아 따라줬고 좋은 스태프 만나 잘 지내왔다"
"베트남 관습·문화 바꾸려는 것 아냐…마음 편하고 집중 잘 된다"
"선수들과 말이 안 통해도 마음 주고받으려고 의무실 사랑방 애용"
기자간담회 하는 박항서 감독 |
지난 2년간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며 베트남 축구 역사를 계속해서 다시 써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박항서 감독이 20일 베트남 축구협회(VFF) 사무실에서 한국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박항서 매직'의 비결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박 감독은 또 향후 베트남 축구 대표팀 운영 계획에 대해 "우리 포메이션이 너무 노출돼 있어서 이것을 계속 끌고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며 전술도 변화를 줄지, 보완할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동남아시아(SEA) 게임 이후 코치들과 모여 고민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파파 리더십'으로 불리는 자신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선수들과 말이 안 통해 깊은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한다"면서 "밤에 사랑방이 되는 의무실을 자주 찾아가 장난도 치며 스킨십을 하는 등 소통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 "나는 베트남 선수들을 한국화하려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기술적인 부분을 지도하는 것이지, 문화나 관습을 바꾸려고 온 것이 아니다"면서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잡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2017년 10월 VFF와 베트남 성인 국가 대표팀,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모두 맡는 조건으로 2020년 1월까지 계약했다.
박 감독의 지휘 아래 베트남 축구는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4강 신화와 10년 만의 아세안 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달성하는 등 연거푸 역사를 다시 썼다.
또 지난 1월 있었던 아시안컵에서는 12년 만에 8강에 진출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도 3승 2무(승점 11)로 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G조 선두 자리는 굳게 지키고 있다. 박 감독은 최근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사상 최고 대우를 받으며 최장 3년(2+1)으로 재계약했다.
다음은 박 감독과의 일문일답.
-- 지난 2년간 많은 것을 이뤘다.
▲ 처음에는 1년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2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모르겠다. 뒤돌아보면 정말 행운이 많이 따라줬고, 좋은 스태프 만나 잘 지내왔지 않나 생각한다.
-- 재계약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정도 결과를 냈으니 떠나야 하지 않느냐는 분들도 계셨고, '그냥 베트남에서 죽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웃음)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에 못 한다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 아니겠나. 저를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재계약 기념으로 선수들에게 밥을 사주기로 했다던데.
▲ 평소 피자를 자주 사주는 편이다. 피자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재계약인데 무슨 피자냐. 좋은 데 가자'면서 한 특급호텔 뷔페를 가고 싶다고 해 내년 소집 때 사주기로 했다.
-- 재계약 발표 후 중동의 강호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라이벌 태국과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치르며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 2승 했으면 좋았겠지만 1승 1무로 올해 마무리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잘못됐으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올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저는 평소대로 경기를 준비했다. 지난 2년간 태국에 한 번도 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회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부족한 개인기를 조직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나.
▲ 실력 차이가 너무 나면 안 되지만 아시아의 중상위권에서는 조직력과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쉽게 지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향후 베트남 대표팀 운영 계획은.
▲ 우리 포메이션이 너무 노출돼 있어서 이것을 계속 끌고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전술도 변화를 줄지, 보완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동남아시아(SEA) 게임 이후 코치들과 모여 고민해볼 것이다. 대표팀에 전문가가 필요하다. 100%는 아니지만, 더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으로 가보고 싶다.
-- SEA 게임에서 60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베트남의 기대가 큰데.
▲ 베트남 정부는 월드컵보다 SEA 게임에 더 관심이 많다.(배석한 이영진 수석코치는 "베트남 정부는 지금 축구 대표팀이 잘하고 있으니 60년 한을 풀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라며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파파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가 있다.
▲ 선수들과 말이 안 통해 깊은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한다. 밤에 사랑방이 되는 의무실에 자주 찾아가 장난도 치며 스킨십을 하는 등 소통하려고 한다. 이번에 SEA 게임에 바로 차출된 대표팀 선수들의 아내와 화상통화로 '당신 남편은 내가 불러서 가는 게 아니라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훈련장에서는 선수들이 조금 산만하기 때문에 조금 엄하게 해서 집중시키는 편이다.
--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된 후 성격이 부드러워졌다는 말도 있는데.
▲ 여기서는 마음이 편하고 잡생각이 들지 않아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것저것 겪으며 눈물도 흘려봤고, 환희도 느껴봤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일종의 피해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학맥이나 인맥이 안 통하지 않나. 다혈질인 성격으로 한국에서 한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다.
-- 현지에서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 저는 선수들을 한국화하는 게 아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지도하는 것이지, 문화나 관습을 바꾸려고 온 것이 아니다.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베트남 국민 가운데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기는 하다.
--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중이다.
▲ 한창 일할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 꼭 의지를 갖고 싸워서 힘을 내주기 바란다. SEA 게임 후 한국에 전지훈련 가면 꼭 찾아보고 싶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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