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해도 머리 길고, 단식해도 죽지 않아…의원직 사퇴 의원 없어” 촌철살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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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돌연 단식 투쟁을 선언한 가운데 이를 ‘정치인의 금기’로 지적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 되고 있다. 바로 ‘정치인의 3대 쇼’ 어록이다.
황 대표는 20일 최고의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주재 한 뒤 기자들을 만나 “오늘 오후부터 단식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에 따르면 “여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강행 처리와 외교안보 문제, 경제 문제 등 총체적 국정 운영의 실패”가 명분이다.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지난 9월 삭발에 이어 단식 투쟁까지 나선 것이다.
과거에도 정국 분수령 때마다 야당 지도부나 의원들이 단식 투쟁에 나선 전례가 있긴 하다. 20대 국회 들어서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5월 여당의 ‘드루킹 특검’ 수용을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걸고 국회 본청 앞에서 8일간 단식했고, 지난 9월에는 이학재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16일간 단식한 바 있다. 하지만 제1야당 대표가 단식 투쟁에 돌입한 것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제1야당 대표가 단식에 나선 건 2003년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 2009년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에 이어 10년 만이다.
제1야당 대표로서 단식이라는 극단 투쟁을 선택한 것은 최근 잇단 악재로 인한 리더십 위기 논란 극복 목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당내 쇄신 요구가 분출하고 보수통합과 인재 영입 논의가 난항을 거듭하는 상황에 비추어보면 투쟁의 시기와 방식, 명분이 분명치 않다는 비판도 많다. 이날 황 대표의 단식 선언에 온라인에선 “정치공학적이다” “뜬금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황 대표의 단식 선언으로 삭발과 단식 투쟁을 정치인의 구태로 지적한 박지원 의원의 과거 발언도 재소환됐다. 박 의원은 조국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의 삭발이 이어지던 지난 9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21세기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가 있다”며 “첫째는 ‘삭발하지 말라’. 두 번째는 ‘단식하지 말라’. 세 번째는 ‘의원직 사퇴하지 말라’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다. 당시 그는 3대 쇼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삭발해도 머리는 길고, 단식해도 굶어 죽지 않고, 실제로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회자되면서 누리꾼 사이에서는 “정치 초년생이 할 수 있는 건 다한다”(ds****), “역대 최초 3대 쇼 시전자가 탄생할 것 같다“(ow****) 등 조소 섞인 반응이 나왔다.
박지원 의원 페이스북 캡처 |
박 의원도 이날 해당 어록을 인용해 황 대표를 비판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황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않아야 할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행에 돌입한다”며 “단식, 삭발, 의원직 사퇴 중 현역 의원이 아니기에 의원직 사퇴는 불가능하지만 ‘당 대표직 사퇴 카드’만 남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위기를 단식으로 극복하려 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다”며 “국민이 황 대표께 바라는 정치는 세 가지 이슈나 장외투쟁이 아니라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인 국회를 정상화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발목만 잡지 말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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