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경제협력의 성공 사례인 삼성전자 박닌성 옌퐁공장 전경. 이건희 삼성 회장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만든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아이폰 출시 이듬해인 2008년 베트남 생산기지 구축을 결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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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49] 글로벌 금융위기 광풍이 몰아닥치던 2008년. 지난 30년의 한국·베트남 경제협력 관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결단이 내려집니다. 바로 삼성전자의 현지 공장 설립입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라는 '세상에 없던 물건'을 내놓으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자 베트남을 글로벌 생산 기지로 결정하고 수천억 원의 투자를 단행합니다. 빠른 투자 결정에 이어 현지 증설도 잇따랐습니다.
2009년 4월 하노이 인근 박닌성 옌퐁1공장을 완성에 첫 생산에 들어간 뒤 2013년 타이응우옌성 옌빈공단에 1·2공장을 추가로 구축했습니다. 이 두 거점 기지는 지금도 삼성전자 글로벌 판매량의 절반을 완성할 만큼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애플을 잡겠다"며 무모할 것만 같았던 당시 이 회장의 투자 결정은 삼성전자라는 개별 기업 이윤추구 활동을 넘어 국가 관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옌퐁1공장 가동 2년 뒤인 2013년 '갤럭시SⅡ'가 출시 5개월만에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그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업체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후 탄탄대로를 걸어온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베트남 경제의 성장곡선으로 그대로 이어져 국가 경제의 도약을 일으켰습니다. 단적으로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의 수출액은 428억달러입니다. 50조원이 넘는 이 거대한 수치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2140억달러)의 20%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지금도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 제품의 출하량에 따라 베트남 전체 수출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4%포인트 안팎으로 증가 혹은 감소할 정도입니다.
10년 앞을 내다봤던 이 회장의 통찰력은 뒤늦게 최근 베트남행을 검토하는 애플과 구글의 행보에서도 확인됩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현지 생산의 관세 환경이 불리해지자 애플과 구글은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으로 베트남 현지 공장 구축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이면서 스마트폰 사업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구글의 경우 최근 베트남 박닌성 소재 한 휴대폰 생산공장을 매입해 개조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로 삼성전자 옌퐁1공장이 위치한 곳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0년간 박닌성에 구축한 탄탄한 전문 인력과 전후방 부품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조치임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도 '포스트 차이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폭스콘은 중국 광둥성 선전시와 허난성 정저우시 공장의 의존율을 낮추고 인도 등 다른 해외 공장 생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소규모로 가동 중인 인도 공장을 확장하는 전략과 더불어 베트남에 폭스콘 신공장이 구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지원책이었습니다.
'추격자'인 삼성전자가 '선도자'인 애플을 상대로 2년만에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한 데는 현지의 저렴한 인건비 기반 못지않게 베트남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우대 조치가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옌퐁 공장에 이어 옌빈 공장에 추가할 때가 대표적입니다. 베트남 법규상 정부는 신규 투자에 한해 신속한 사업 허가와 용지 무상 제공, 4년간 법인세 면제 조치 등을 제공합니다. 옌빈 공장의 경우 추가 투자에 해당돼 이 같은 혜택을 적용할 수 없지만 베트남 정부는 이를 추가 투자가 아닌 별도 프로젝트로 분리해 신규 투자에 적용하던 혜택을 그대로 적용해준 것입니다.
지난 2012년 10월 베트남 박닌성 옌퐁공장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베트남 사업장 현황판에 방문 기념 사인을 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 스마트폰 공장(옌퐁·옌빈)은 삼성전자 글로벌 전체 출하량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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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호주머니에서 최대한 많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베트남 정부는 그 정답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만약 이 회장이 2008년 베트남이 아닌 한국에 글로벌 전략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세우려 했다면 각종 인허가 규제에 경쟁은 고사하고 적기 준공조차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베트남 투자 성공사례는 베트남 경제의 퀀텀점프에 중요한 도약대가 됐지만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아직도 우리는 배가 고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베트남 산업부처 관료들을 만나고 돌아온 한국의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트남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가치와 역할을 정부 관료들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이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혁신에서 삼성전자가 베트남 경제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한 정부 관료는 "섬유 부문에서 수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성공했지만 혁신 디자인센터 하나 구축하지 않았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오는 11월 25일 한국에서는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모두 모이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사흘 일정으로 열립니다. 정부는 1989년 한·아세안 간 대화관계 수립 이후 30년의 협력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 30년을 도모하는 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남방정책 2.0'으로도 불리는 이 비전 방향성은 더 이상 한국과 아세안이 물적 공여자(한국)와 수혜자(아세안)의 관계가 아닌,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상생의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 등 '제2의 베트남' 성공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입니다.
삼성전자도 베트남 정부의 요구에 발맞춰 현지 기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컨설턴트 양성 프로젝트 등 다양한 책임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뉴욕의 '삼성837', 독일 프랑크프루트의 '자일 쇼케이스'에 이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호찌민에 브랜드 체험 공간인 '삼성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생산 거점이라는 기존 역할에서 나아가 아세안 지역의 디지털 문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과거는 미래를 준비하는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인구 6억5000만명의 아세안이 미래 새로운 협력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거 사례에서 실패와 성공 요인을 판별해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정부 간 대규모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를 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30년을 통틀어 최고의 협력 사례는 결국 '기업가 정신'에서 나왔다는 생각입니다. 대기업부터 미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꿈꾸는 젊은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아세안을 상대로 10년 전 이건희 회장과 같은 제2, 제3의 과감한 도전이 이어져야 한국과 아세안의 미래 협력에도 파괴적 혁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재철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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