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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집의 궁극적 목적은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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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의 저서 '집의 정신적 가치, 정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집은 개인의 철학을 반영하는 공간이자 그 사람만의 세계를 표출하는 장소다.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신적 가치를 갖는 게 바로 집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집에 지쳐 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위로도 받지 못한다. 집의 궁극적 목적은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는 집이 그 정서적 안식처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오늘날 우리는 집을 물질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데 매우 익숙해졌다. 특히 아파트는 물질로 대표되는 가치관의 집약판이자 가장 일반적인 투자 수단이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아파트 공화국'이 바로 한국 아닌가. 삶의 품인 '집'을 상실한 채 물질적 재산인 '주택'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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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고택과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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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고층 아파트들



건축사학자이자 건축가인 임석재(58)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집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오늘날 그 가치와 역할을 정주(定住) 조건이라는 학술적 주제로 풀어 쓴 '집의 정신적 가치, 정주'를 펴냈다. 이 책은 집이 지닌 의미를 철학적·종교적·역사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탐구한다.

제목이 일러주듯 이 책은 태어나면서부터 근원적 불안을 안고 있는 인간이 나그네와도 같은 삶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정주'를 꼽는다. '한 곳에 정착해 오래도록 산다'는 뜻의 정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실존 조건이자 집에 마음을 붙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 정주 조건을 확보하려면 물리적 환경, 정신적·심리적 안정, 존재론적 확신이 두루 충족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중에서도 물리적 건물에만 집착해서는 안되며 집을 대하는 시각, 집에 부여하는 가치, 집에서의 생활태도가 건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번 신간은 집을 단순히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자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일침을 놓는다. 그러면서 집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자고 진지하게 권유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건축학자의 관점에서 집에 꼭 필요한 가치를 이론화하고 이를 실생활과 접목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반적 주거 형태는 서양 주택을 모델로 삼았다. 따라서 서양의 주택 형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서양 사람은 예부터 집에 대해 어떤 정신적 고민을 가졌는지를 역사적·건축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인문학자로서의 관점도 주목할 만하다. 집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더욱 근원적인 차원에서 탐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적 시각, 몸 이론, 상징 이론, 영국 경험주의철학, 페미니즘, 생태학, 심리학 등이 다각도로 동원된다. 이와 함께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교훈을 과거 사례에서 찾아내어 적용했다.

집은 개인적인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개인의 집이 모여 한 사회와 시대의 주거 문화를 이룬다. 집은 한 개인의 세계인 동시에 한 사회와 시대의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집과 인간과 사회는 서로를 비추는 삼각 거울이라고 하겠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저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고통받는 이유를 가장 개인적 공간인 집에서 찾는다. 이 땅에 뿌리내리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정주 조건이 실종됐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나의 집을 어떤 가치로 정의하고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에 따라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여인숙이 되기도 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이 되기도 한다"면서 "인간의 일상이 집과 하나가 되려면 집에서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집이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부터 알자"고 제안한다. '소유'의 집을 넘어 '존재'의 집을 찾자는 것이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임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4년 이화여대 건축학과를 창설해 제1호 교수로 부임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폭넓고 깊이 있는 건축 연구로 지금까지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한국 건축과 도덕 정신',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등 57권의 단독 저서를 출간했다.

한울엠플러스. 392쪽. 3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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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정신적 가치, 정주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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