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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신화와 역사, 또 예술의 삶… 바라캇서울 그리스·로마 유물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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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바라캇 서울 그리스·로마 유물전 1층 전경. 바라캇 서울 제공.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 유물을 한국에서 만날 기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도전적이고 자신만만한 질문과 함께 만난 바라캇 서울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이다. 경복궁의 전통적인 기와 돌담을 마주한 갤러리 건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거대한 모자이크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변이 무려 일 미터가 넘는 마름모꼴의 패널 네 판으로 구성된 로마 제국 시기의 유물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여신들의 자태를 매혹적으로 형상화했다. 기원후 2세기경에 제작된 이 예술품은 180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훌륭한 보존 상태와 화사한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 매우 작은 입방체의 돌 조각들을 모아 유려한 이미지로 표현한 모자이크는 고대 로마인들의 미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유산이다.

이 거대한 모자이크 작품들은 현재 바라캇 서울에서 진행 중인 ‘고귀한 신화, 위대한 역사: 그리스·로마 유물 컬렉션’(이하 그리스·로마 유물전)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바라캇 갤러리로부터 운반해왔다.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바라캇 갤러리는 2016년 개관한 서울 외에도 영국 런던, 미국 LA, 홍콩에 지점이 있다. 갤러리 소유주이자 컬렉터인 바라캇 가문이 5대째 수집해온 전 세계의 유물은 4만여 점에 달하며, 이 컬렉션은 4개국의 갤러리에서 역사를 사랑하고 예술품의 소장을 원하는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다. 바라캇 서울의 그리스·로마 유물전과 같이 특별 전시가 기획되면 유물들은 필요에 따라 이동되기도 한다.

바라캇 서울의 그리스·로마 유물전을 위해 한국으로 온 로마 모자이크 속 사계절의 여신들은 국내 관람객들을 확실히 매료시키고 있다. 전시관 1층의 중앙 공간을 장악한 작품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매우 희귀한 고대 그리스의 프레스코화나 더 오랜 역사를 가진 헬레니즘기의 조각상조차 주변부로 밀어냈다. “탁월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도상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말하는 바라캇 서울의 박민경 고대 유물 연구원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와 같은 그리스·로마 신화가 미술로 표현된 양상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각 계절에 나타난 식물과 의복 착장의 표현은 고대 로마인들이 절기마다 행했던 풍습이나 당대에 취급했던 작물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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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헬레니즘기의 남성 토르소. 바라캇 서울 제공.


로마 모자이크의 우측에는 그리스 헬레니즘기의 대리석 조각이 놓여있다. 머리와 팔, 다리 일부가 소실된 상태의 토르소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미(美)로 생각했던 남성의 균형 잡힌 신체 표현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둔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에 따라 척추가 S자형으로 휘어진 이 남성 조각상은 인체의 곡선미와 율동감이 유난히 강화되는 기원전 3세기경 헬레니즘 조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바닷속에 오랫동안 수장돼 있었던 탓에 조각의 표면에는 산호초와 같은 해양 생물이 서식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 박물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매끈한 대리석 조각들과는 분명히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데미안 허스트가 선보인 작품이 연상된다는 분도 계시지만, 이 조각은 이천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진짜 보물입니다.”

정말로 현대 미술계의 악동인 데미안 허스트는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 전시에서 바다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조각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연출로 감탄과 탄식, 재미와 허무를 동시에 선사한 데미안 허스트의 ‘가짜 유물’ 작품과 달리, 바라캇 서울의 남성 토르소는 고대 그리스의 숭고한 신화와 위대한 역사, 그리고 예술품의 삶을 품고 있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 메인 작품으로 들어간 이 토르소는 바라캇 갤러리의 수장이자 스스로 예술가이기도 한 파에즈 바라캇 회장이 가장 사랑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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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캇 서울 그리스·로마 유물전 지하층 전경. 바라캇 서울 제공.


전시관의 지상층과 지하층을 잇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황금빛 진열장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순식간에 전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인디고블루 색상의 벽면을 바탕으로 배치된 묵중한 유물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에 들어선 것 같은 숭고함을 자아내는 지상층과 달리, 지하층은 대형 진열장과 소형 스탠드에 놓인 크고 작은 유물들이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며 로마 황제의 보물 수집실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24K 도금으로 완성된 쇼케이스는 고대 유물들만큼 탄성을 자아내는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작품이다.

“페니키아의 봉헌상이나 그리스 도기, 에트루리아의 청동 조각상, 로마의 대리석 석관까지 고대 지중해 세계를 아우르는 유물들이 모두 이 황금 진열장에 놓여있는데, 어느 것 하나 안 어울리는 부분이 없어요. 금이라는 소재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라캇 갤러리의 유물 컬렉션은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소장한 유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급의 보물이지만, 언제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준비가 된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다. 박민경 연구원은 “어떤 유물은 박물관에서 학술 연구와 보존의 대상이 되지만, 또 다른 고대의 작품은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인생을 예술적으로 충만하게 꾸며주기도 한다”고 강조하며 바라캇 갤러리의 고대 주화 컬렉션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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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은화 목걸이. 바라캇 서울 제공.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하에 마케도니아에서 주조된 고대 그리스 은화를 펜던트로 활용한 목걸이입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장르의 작품이지만, 해외에서는 이처럼 고대 주화로 만든 액세서리를 모으고 실제로 착용하는 수집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고대와 현대가 한순간 이어져 오래된 예술 작품이 새롭게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전율을 느낀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예술이 당신의 눈앞에서 또 다른 형태의 태동을 시작하는 찰나를 체험할 수 있는 바라캇 서울의 그리스·로마 유물전은 오는 12월까지 계속된다. (문의 02-730-1949)

한윤종 기자 hyj070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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