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교수 '들려준 것과 숨긴 것' 출간
1719년 4월 25일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 표지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정확히 300년 전인 1719년 발표한 '로빈슨 크루소'는 고전으로 손꼽히는 모험소설이다.
중류층 출신인 주인공 크루소는 가출해 선원이 됐다가 곡절을 겪는다. 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되고, 브라질 농장에서 일한다. 그러다 흑인 노예를 구하러 가던 중 배가 난파해 무인도에 갇히고 28년간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한다.
'로빈슨 크루소' 서사는 유럽 중심적이고 백인 남성성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주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영미 소설과 비평이론을 연구하는 이석구 연세대 교수는 신간 '들려준 것과 숨긴 것'에 실은 글 '운 좋은 자본가 혹은 정신적 난파자'에서 이러한 기존 견해를 비판하고 크루소를 강박증, 피해망상증, 나아가 과대망상증에 시달린 사람으로 본다.
그는 "크루소에 대한 디포의 묘사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 질서를 낙관적으로 대변하는 영웅으로 보기에 문제가 많다"며 크루소가 자본주의의 확장성을 구현하는 만큼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고도의 죄의식, 끊이지 않는 불안감, 과대망상 등 현대의 정신의학이 발견해낸 거의 모든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크루소는 몸만 난파당한 것이 아니라 정신도 난파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크루소가 난파한 이듬해인 1660년 1월 3일 일기를 보면 약 3개월간 거처로 삼은 바위 주변에 울타리를 세웠는데, 그 길이가 22m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크루소가 이전에도 바위 앞에 방책을 세우는 작업을 했다고 적은 기록을 찾아낸다. 즉 크루소가 조난 초기에 충격으로 상상과 현실을 착각했다는 것이 저자 판단이다.
그는 "크루소의 지나친 상상력은 자신이 만든 통나무 카누를 '군함'으로, 울타리로 막은 동굴을 '성'으로 부르는 데서도 드러난다"며 "경제력 획득에 근거를 둔 이 계급적 상상력은 사회적 권력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고 해석한다.
이어 크루소가 갖는 과대한 망상은 야만인의 공격을 예상할 때 카누 200∼300척이 몰려온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 발자국을 보고 도망친 데서도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정치적·경제적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전통에서 크루소를 이해하려던 시도는 모두 재고해야 한다면서 "이 소설은 개인주의 출현을 전면에서 알렸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물을 언제 빼앗길 줄 모른다는 가진 자의 두려움이, 그의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암류로 흐르는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작품"이라고 결론짓는다.
책에는 이외에도 밸런타인이 쓴 '산호섬', 스티븐슨 작품인 '보물섬',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 등 다양한 서구 문학에 대한 비평이 실렸다.
소명출판. 478쪽. 3만3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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