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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韓日 내달까지 타협의 물꼬 트지 못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 맞을 수도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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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일왕 즉위 행사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21분간 회담하고 사태의 조기 해결을 희망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1년 만에 이뤄진 고위급 회동이라는 점에서 양국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양국 외교부의 발표를 보면 이 총리는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관련,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아베 총리는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현안 해결을 위한 일본 쪽의 전향적 자세는 일단 보이지 않지만 아베 총리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인 양국 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만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결국 이번 회담은 이 총리가 말한 대로 관계 회복을 향한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한 데에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만약 양국이 타협의 물꼬를 트지 못한 채 다음달 하순 지소미아 효력상실을 맞고, 연내 한국 내 일본기업 압류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이뤄질 경우 양국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양국의 내상은 깊다. 일본은 가해자로서 과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빌미로 치졸한 무역 보복에 나섰으나 한국에 대한 수출 감소와 한국인 관광객의 급감으로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일 무역의 불투명성과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의 불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의 일본의 비(非)협조 가능성 등으로 부담이 적지 않다. 정부 간 갈등이 양국 국민의 적대 감정 심화로 이어질 경우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다.

전문가들은 가능하다면 연내 문제를 털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실무선에서 협상에 진척이 없다면 정상이 나서 실마리를 풀어야 하고 협상이 결실을 보려면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해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세계일보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회담을 끝으로 2박3일 일본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했다.

지난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의식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던 이 총리는 이날 저녁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 총리는 아베 총리와 만나 한일관계 악화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면서 한일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이 총리는 또 과거 동아일보 특파원 시절 인연이 됐던 일본 정·재계 인사 등을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일 우호협력관계 의지를 밝혔다.

일본의 일반시민, 대학생 등과 두루 만나 한일 교류가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일갈등 해결을 위한 우호적 여건 조성에도 힘썼다.

한국과 일본 앞에 강제징용 판결, 수출규제 강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라는 복잡다단한 갈등이 놓여있는 가운데, 이 총리는 앞으로도 한일관계 해결을 위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 아베와 회담 마치고 日 방문 일정 마무리…어떤 대화 나눴나?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이날 회담에서 '양국관계의 악화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데 공감하면서 갈등 해소를 위한 양국 간 협의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당국은 이미 '관계 악화를 막자'는 인식을 공유해왔지만, 양국 최고위층의 갈등해소 의지를 확인하면서 양국 간 협의 노력에 상당한 동력이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그간 일본 총리관저의 기류가 '한국이 알아서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해라'는 쪽에 가까웠지만,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함께 해법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입장과 관련해 "분명한 것은 '나는 팔짱 끼고 다른 쪽 쳐다볼 테니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및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 등을 둘러싼 해법 찾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리는 아베 총리와의 회담 뒤 "이제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외교당국 간 비공개 대화가 이제 공식화됐다고 받아들인다"면서 "이제부터는 (양국 대화가)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교국장급 협의를 통해 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해왔는데, 앞으로는 보다 빈번하게 머리를 맞댈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총리회담의)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외교당국의 조치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부턴 양국 대화가 좀 더 속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만 과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때처럼 차수를 붙여가며 국장급 협의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밝혔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징용판결을 둘러싼 갈등은 양국의 '의지'가 있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세계일보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이날도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명확하게 말했듯이 '일한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이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리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계속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요구해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며, 따라서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 배상판결은 청구권협정에 위배되며 곧 '국제법 위반'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본 인식하에 한국은 '사법부 판결이 존중돼야 한다'고, 일본은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양국이 모두 만족할만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日 언론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 둘러싸고 평행선"

일본 언론들은 이날 회담에서도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한일 갈등의 핵심 이슈인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렸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일한, 징용공 문제에서 평행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이 평행선으로 끝났다고 전했으며, 요미우리신문은 인터넷판 기사에서 이번 회담이 "25분의 의례적 회담"이었다고 표현했다.

한국이 지난 6월 이른바 '1+1'(한일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위자료 지급)안을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한 뒤 이렇다 할 진전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한일 양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1+1'을 토대로 가능한 여러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온 것으로 전해졌는데 최근 진전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에서 가진 내신 기자회견에서 한일갈등과 관련,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는 한층 깊어졌다고 생각되고 또 간극이 좀 좁아진 면도 있지만, 아직도 그 간극이 크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간극이 좁아진 부분'에 대한 후속 질의에 답하지 않으면서 "양측이 서로 공개할만한 상황이 됐을 때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모종의 해법이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세계일보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일본 도쿄 일왕 거처인 고쿄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 내외 초청 궁정연회를 마친 후 고쿄를 빠져나오고 있다. 일본 내각부 제공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사과를 전제로 위자료는 한국 측이 지급한다'라거나 '일단 한국 측이 위자료를 지급하되 일본 기업은 추후 여건이 마련되는 대로 위자료에 기여한다'는 등의 해법이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이들 방안도 일본의 동의 여부는 제쳐두고 '사법부 판결 존중'과 '피해자 동의'라는 한국 정부의 전제 조건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국 갈등 해소할 시간 얼마 남지 않아…향후 한달 사태 해결 위한 '골든타임'

한국과 일본이 갈등을 해소할 시간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특히 앞으로 한 달이 사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한국 정부는 내달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효력을 잃기 전에 해법을 찾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번복을 촉구하고 있어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태국, 10월 31일∼11월 4일)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칠레, 11월 16∼17일) 등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함께 참석하는 다자회의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일 간 물밑 협상에 성과가 있다면 한일 정상이 이들 회의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만나 갈등 해소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르면 연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와 맞물려 한일갈등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당 "양국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한 자리일 뿐" 평가절하

여야는 24일 이 총리와 아베 총리 간 회담을 놓고 "중요한 분기점이 되길 바란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한 자리였다"고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이유로 일본이 무역제재 조치 후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화의 불씨가 살아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정부는 일본의 통상보복에 대해 우리 경제의 대일 의존도를 줄여 우리 기업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한일 간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의 손길을 내밀어왔다"며 "이번 면담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자평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양국 정상회담은 물론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길 바란다"며 "짧은 만남이었으나 총리 회담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고 평했다.

이어 "더 이상 한일관계가 악화돼선 안 된다는 점에서 양국의 공감대를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면서 "정부는 손학규 대표가 제시했던 것처럼 물질적 배상을 포기하되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의 일본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고도의 외교 해법 모색'을 통해 일본과 신뢰의 영역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의당 유상진 대변인도 "격화되고 있는 한일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국의 최고위 인사들이 만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정의당은 이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가 제대로 정상화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분명한 사과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존중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는 시한에 따른 정당한 조치 등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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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학교 미타캠퍼스를 방문, '일본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미소짓고 있다. 뉴스1


반면 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 경색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도 결국 21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온 유의미한 결과물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결국 이번 만남이 각 정부의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한 자리가 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한일 관계에서 기인한 경제, 안보 위기로 고통 받는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대안과 노력을 촉구한다"고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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