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홍한별 옮김
창비 | 500쪽 | 1만6800원
소설 <밀크맨>은 아일랜드 독립세력과 영국 지지세력 간의 테러와 보복이 난무하던 1970년대 북아일랜드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2006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아일랜드공화군(IRA) 지지자들이 폭력시위를 벌이자 진압경찰들이 방패와 곤봉을 들고 맞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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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폭력 다룬 ‘맨부커상 수상작’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한 여성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괴
살아남기 위해 감정까지 삭제하는
고통스러운 인간성 말살 과정 묘사
압도적인 책이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지역이라는 폭력적 시대와 사회를 그려내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가시적·비가시적 폭력을 그려내는 방식 모두 압도적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가도, 동시에 국가적 폭력과 진영논리가 지배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1970~1980년대를 살았던 여성이 겪은 시대적 폭력과 젠더 폭력을 이처럼 섬세하고도 현대적으로 그려낸 소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2018년 맨부커상이 애나 번스(아래 사진)의 <밀크맨>에 돌아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은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한림원의 성폭력 파문으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보란 듯이 맨부커상은 애나 번스의 <밀크맨>을 수상작으로 꼽았다. 콰미 앤서니 애피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은 “이 책은 ‘#MeToo’와 관련된 논의들에 깊고 섬세하며 도전적인 화두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소설의 원제는 <The Troubles>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무장세력(IRA)과 이를 저지하려는 무장세력(UDA) 사이의 테러와 보복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지금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당시 그곳은 ‘전쟁터’였다. ‘반대파’나 ‘수호파’에 의해 죽은 부모나 형제자매, 자식이 없는 집이 없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을 괴롭히는 건 이런 명백한 폭력이 아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폭력이었다.
걸으면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열여덟 소녀 ‘나’에게 어느 날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고 차에 탈 것을 제안한다. ‘밀크맨’이라 불리는 남자는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반대파’의 중심 인물로 명망이 높다. 밀크맨은 주인공의 동선을 파악하고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거는 일을 반복한다. 순식간에 ‘나’는 밀크맨과 불륜관계라는 추문에 휩싸인다.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폭력은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성적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이지만, 당시엔 이런 폭력에 마땅한 이름이 없었으며 ‘사소한 것’이었다. 밀크맨과 ‘나’의 루머는 이 지역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람들은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는 게 잘못”이라며 ‘나’를 비난한다.
소설은 성적 추문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어떻게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도 한 사람의 외면과 내면을 철저히 파괴하는지를 현미경을 들이댄 듯 섬세하게 묘사한다. 일인칭 화법의 소설은 혼란스러운 ‘나’의 내면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당시 ‘수치’라는 단어조차 없었지만 주인공은 “수치의 감정은 확연히 느꼈고” “분노보다도, 증오보다도, 심지어 공포보다도 더 강력”하다고 말한다. 말할 수 있는 수단조차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실체와 위력을 정확하게 보고 느끼게 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성장한 작가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이 가능한 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소설 속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는 당시 한국을 빼닮았다. 애나 번스는 한국어판을 내면서 “197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를 살아가는 동안 한국 사람들 역시 극도의 압박과 폭력,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두 진영으로 분열된 사회, 아이의 이름엔 ‘물 건너’ 나라에 속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버터조차 ‘맞는 버터’와 ‘틀린 버터’가 있는 사회는 “누군가와 기분 좋게 잡담을 나누고 나서 돌아가다가도 머릿속에서 대화를 다시 돌려보다보면 ‘이것’이나 ‘저것’을 말한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회피기제를 마련한다. ‘나’가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에 집착하는 것도, ‘나’가 신뢰하는 유일한 남성인 셋째 형부가 운동 중독에 빠진 것도 같은 이유다. 추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아무런 대꾸와 해명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 ‘나’는 ‘미시감’이라 부르는, 기존의 경험을 기억 속에서 선택적으로 삭제해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하지만 ‘나’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모든 행동들이 세간의 공격거리가 된다. 길을 걸으며 책을 보는 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부적절한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 감정과 기억까지 삭제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럽게 전달된다.
소설은 강력한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당시 젠더에 따라 차별적으로 가해지던 폭력의 정도를 지적하고, 공동체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결혼과 출산이란 역할,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던 혐오와 폭력도 보여준다. 동시에 해방적 공간과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홍등가’라 불리는 ‘정상 가족’에서 이탈한 자들이 사는 지역이 등장하고,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인 ‘문제 여성’들 그룹이 등장한다. 지역사회는 ‘문제 여성’들을 ‘동성애자’ ‘낙태 시술자’로 몰아가며 배제하려 하지만, 이들만이 밀크맨의 문제를 “중년 남자 하나가 젊은 여자들에게 추근대며 그네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문제 여성’들이 하는 말을 ‘찻잔 속 태풍 같은 이야기’라고 무시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은 이제 거대한 태풍이 되어 세상을 흔들고 있다. 한편 ‘문제 여성’들이 제기한 문제들-길을 걷다 남자에게 얻어맞거나, 누가 엉덩이를 슬쩍 만지는 일, 남자들이 큰 소리로 외모를 품평하는 일, 생리가 수치스러운 문제로 취급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소설이 어렵고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직된 사회 속에서 하늘의 석양조차 ‘하늘이 푸르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하던 주인공은 점차 “진실이 두드리는 감각”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이 소설일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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