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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조국과 윤석열, 어긋난 ‘환상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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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검찰개혁 아이콘과 적폐수사 아이콘의 만남…

대립할 수밖에 없는 조합에 ‘환상’을 기대한 건 애초 무리였을지도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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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짐을 남겨 미안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10월14일 오후 1시30분께 조국 법무부 장관은 집무실에 모인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오수 차관을 비롯한 조 장관 참모들은 깜짝 놀랐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날 오전 발표한 검찰개혁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점심을 함께 했던 장관이었다. 조 전 장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작별의 말을 하는 순간에도 차분했다. “(후임 장관으로) 나보다 더 개혁적인 분이 오실 것입니다.” 그는 “검찰개혁을 잘 마무리해달라”고 간부들에게 부탁했다. 조 장관은 30여 분 뒤 “저의 쓰임은 다하였습니다. 이제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라는 사퇴의 변을 남기고 법무부 청사를 나섰다.

법무부, 검찰권을 견제하는 기관



같은 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 장관 사퇴와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습니다.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메시지를 읽는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회의장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두 달여 동안 분열과 갈등의 진원지였던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조 전 장관과 윤 총장의 ‘환상의 조합’은 한 달 만에 무참히 깨졌다.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조국)과 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으로 손발을 맞춰 적폐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두 사람이었기에, 대통령의 실망은 더욱 큰 듯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환상의 조합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말이 나온다. 두 기관은 존재 이유와 역할에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검찰권을 견제하는 기관이다. 검찰에 대해 인사권, 감찰권, 예산권을 행사해 검사들의 검찰권 남용을 막아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검찰의 힘을 빼는 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들이 친정인 검찰을 의식해 제 소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검찰은 범죄를 소탕하는 기관이다. 권력형 비리와 강력 범죄 등을 엄하게 처벌해 ‘일벌백계’ 효과를 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일벌백계는 강력한 수사력이 필수적이다. 수사력이 약해지면 검찰은 존재감을 위협받는다. 그런 검찰에 검찰의 힘을 빼는 검찰개혁이 달가울 리 없다. 더욱이 윤 총장은 ‘검찰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윤 총장에게 조 전 장관과 환상의 콤비를 이뤄 검찰개혁을 완수할 것을 기대하는 건 애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조국-윤석열’ 조합을 택한 것은 두 사람의 장점을 활용하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검찰개혁의 아이콘인 조 전 장관과 적폐청산의 아이콘인 윤 총장만큼 검찰개혁의 진정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조합도 없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는 것도 검찰개혁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검찰이 정치검찰이라 비난받은 이유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에서 검찰개혁의 적임자인 셈이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국민은 검찰권을 절제해서 행사하는 것과,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도 이 두 요구가 서로 모순된 게 아니기 때문에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 ‘상수’ 두고 윤 총장 ‘발탁’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야심찬 기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조국-윤석열’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조합이 돼버렸다. 그 원인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 먼저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중심으로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검찰개혁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조 전 장관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학자 때부터 권력기관의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을 주도하는 등 대통령의 핵심 참모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해 “(검찰개혁의) 법제화 과정이 남아 있는데 그 작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발탁한 것도 조 전 장관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문 대통령 측근이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을 주도한다면 검찰이 저항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화두를 던지면 윤 총장이 이에 맞는 개혁안을 내놓는 구도를 그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자였던 조 전 장관은 직업정치인처럼 ‘공직 임명’을 준비하며 살지 않았다. 그는 2010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나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한다”며 공직을 맡을 뜻이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이때만 해도 그의 말은 ‘겸손’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제기된 각종 의혹은 9년 전 그의 발언이 겸손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낳았다. 조 전 장관 가족의 삶은 불법성 여부를 떠나 학자 시절 그가 말과 글로 강조해온 ‘공직자 윤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잇단 의혹 제기는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례 없는 검찰의 태도는 윤 총장의 캐릭터가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윤 총장은 ‘직진 스타일’이다. 수사할 때 좌고우면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수사할 때도 수사 논리를 앞세운다. 2013년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에 맞장을 뜬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특별수사팀장이던 윤 총장은 이명박 정권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과정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었다. 윤 총장은 조영곤 지검장에게 “좌천될 것을 각오하고 수사 외압을 막아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은 검사들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사 외압을 막아주는 것이 검찰 수뇌부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 전 장관 수사도 똑같은 생각으로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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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장관 지원으로 특수부 검사 두 배로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 총장이 처음부터 조 전 장관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외부에서 데려온 참모들은 청문회 준비 경험이 없었다. 그것을 본 윤 총장이 ‘내가 청문회를 해보니까 실제 준비 경험이 있는 검사들이 일을 잘하더라’라며 유능한 검사들을 후보자 쪽에 보낼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딸이 고2 때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록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여러 의혹이 터지면서 검찰에 조 장관 가족 관련 ‘제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도 조 전 장관 관련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해졌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다. 후배 검사들은 조 장관 임명 뒤에는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고, 윤 총장은 수사를 재가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치권의 고발 사건은 차일피일 미루다 여론에 떠밀려서 수사하는 게 과거 검찰 수뇌부의 태도였다. 그래야 외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총장은 정면승부를 택했다”고 말했다.

조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행은 윤 총장의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신감의 뿌리는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뒤 이끌었던 적폐 수사다. 윤 총장의 지휘를 받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데 이어, 사법부 수장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했다. 그야말로 검찰 전성시대라 부를 만했다. 그가 이끈 특수부는 검찰 역사상 가장 막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윤 총장에게 조 전 장관은 별로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윤 총장의 성과는 조 전 장관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검찰개혁이 “학자로서 오랜 소신”이었던 조 전 장관은 과도한 검찰 권력의 원인이 특수부 수사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윤 총장의 요구대로 특수부 확대를 받아들였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8월 23명에 그쳤던 특수부 검사는 2년이 지난 2018년 8월 43명으로 늘어났다. 조 전 장관은 2018년 6월 정부의 검찰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특수부 축소를 추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 등에 한하여 검찰의 직접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 수사가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검찰개혁 작업에 몰두했다. “일에 집중하는 것이 가족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길”(법무부 관계자)이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동생 조권씨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참모들에게 거취 문제를 상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생의 영장이 발부되면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참모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동생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참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윤 총장이 사퇴하지 않는 이유



하지만 부인 정경심 교수의 건강상태는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조 전 장관은 10월13일 검찰개혁 관련 당·정·청 회의를 마친 뒤 사퇴의 뜻을 밝혔다. 여당과 청와대 인사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조 전 장관은 참모들은 물론 가족에게도 사퇴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의 사퇴에 윤 총장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윤 총장의 동반 사퇴설이 나돌았으나 대검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윤 총장을 잘 아는 법조인들은 그가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윤 총장이 동반 사퇴하면 조 전 장관 수사가 그의 낙마를 노리고 진행됐다는 여권의 주장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윤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 총장은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됐을 때도 사퇴설이 나돌았다. 정권 초기에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검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윤 총장은 항명했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한 뒤 대구고검으로 쫓겨났다. 이후 박근혜 정권 말기까지 지방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는 사표를 쓰지 않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의 정당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유죄를 이끌어내려면 공소유지를 잘해야 하는데 당시 검찰 수뇌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 공판팀을 노골적으로 홀대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총장이 사표를 쓰면 공소유지를 위해 팀에 남아 있던 검사들이 동요할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끝까지 버틴 보람은 있었다. 원 전 원장은 2018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검찰은 조 전 장관 수사에 참여했던 특수부 검사들이 수사가 끝난 뒤 인사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윤 총장의 사퇴설을 일축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도 검찰 안에서 나온다. 청와대와 여당의 특수부 축소 요구가 강해지는 등 여권의 압박도 심상치 않다.

윤 총장은 10월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퇴 여부를 묻는 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제게 부여된 일을 법과 원칙에 따라 충실히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 수사와 관련해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지지했던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이 조 전 장관 수사에 분노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저와 수사팀은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환상의 조합’ 저버린 윤 총장도 부담 될 것



하지만 문 대통령이 품었던 ‘환상의 조합’ 기대를 저버린 것은 윤 총장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여권 인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검찰 수장으로 발탁했다.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윤 총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도 제대로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결과는 오히려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독한 역설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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