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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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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성민의 톡팁스-25]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직업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가 그렇고, 평론가가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기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기자들이 있지만, 기자로 이름 알리기는 쉽지 않다. 신문사든, 잡지사든, 혹은 방송국이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종을 많이 치고, 관점이 독특해도 기자 개인보다는 소속된 매체가 더 많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또 다른 직업 비평가. 비평가들은 사정이 다르다. 한 번 인정받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이름이 알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알려지기까지 견뎌낼 수 있는 힘이다.

기자 출신 음악 평론가 임진모. 팝송에서부터 대중음악까지 30년 가까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1991년부터 시작했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28년. 대단한 집념이다.

오래 살아남는 비평가들의 공통적인 특징. 일단, 비난보다 칭찬이 많아야 한다. 적이 많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등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임진모는 다르다. 칭찬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는 평론을 하지는 않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다. 비평 대상이 되는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줄 정도로 강한 톤으로 이야기를 한다.

종편 채널 한 예능프로그램 ‘판벌려-이번 판은 한복판'에서 만능돌로 거듭 나기 위한 여성 연예인 5명이 투혼을 펼쳤다. 이른바 셀럽파이브. 첫 번째 싱글 앨범을 내고, 호기롭게 두 번째 싱글 앨범을 냈다. 제목은 ‘셔터'. 그러지만 결과는 부진.

셀럽파이브는 평론가 임진모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임진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하게 한마디했다. "망했다." 당황한 셀럽파이브 멤버들은 아예 말문을 열지 못했다.

물론 예능적 감각을 담아 한 이야기 일 수 있다. 하지만 임진모 평론은 부드럽지만, 예리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촌철살인이라 한다는데, 어쨌든 임진모의 매력이다.

◆늘 본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체로 보면, 나이가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 신곡을 듣지 않아요.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을 들어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왜? 젊었을 때 음악이란 건, 내가 빛났고, 내가 젊어서 자랑스러웠을 때이거든요. 싱싱했던 때, 그런 때 들었던 음악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환기하는 것이지요."

‘임진모가 들려주는 팝 음악의 역사'에서 임진모가 강의한 내용이다.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쉽게 이유를 파악하기 힘든 내용이다. 임진모는 그것을 이야기한다.

임진모는 단순한 대중음악 평론가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다. 50년, 100년이 지나면 지금 대중음악은 국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 국악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살면서 부르던 노래가 국악이다. 그래서 임진모는 대중음악 평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임진모는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출연자로 나서 음악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10여 권이 넘는 대중음악 전문서를 출간했고,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도 한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임진모가 30년 가까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대중음악의 표피적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대중음악과 인생의 관계를 통찰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음악평론가들이 등장했다 사라졌지만, 임진모만 여태 건재한 이유이다.

‘Glasgow(No Place Like Home)'라는 대표곡으로 유명한 음악영화 ‘와일드 로즈'. 임진모는 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했다. "음악의 동반자는 삶이다! 감동의 발견!"

임진모의 본질적 분석은 이런 식이다. 흔히 인생의 동반자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어렵거나, 지루해서 무료할 때, 아니면 좋아서 신날 때, 누구나 노래를 찾는다.

그러나 임진모는 다른 해석을 한다. 불변하는 절대가치로서의 음악이 있고, 그 음악이 인생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곱씹게 만든다.

◆한결같은 주제여야 한다.

"중학교 시절, 저는 홍콩의 전설적 무술 배우 이소룡의 광팬이었습니다. 코스모스백화점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을 기웃거리다가 팝송과 접하게 됐고, 고등학교 입학 전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당시 존 레논, 로보, 카펜터스, 신중현, 이장희는 제 이성을 잃게 했습니다. 그래서 세운 인생의 목표가 음악평론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음악'이 중심이었습니다."

한 언론사에서 초청받아 ‘대중음악, 소통과 혁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친 임진모. 그 자리에서, 임진모는 자신이 어떻게 대중음악 평론가가 되었는지를 소상히 밝혔다. 어느 날 갑자기 대중음악 평론가가 된 게 아니라 45년 된 꿈의 결실이라는 것이었다.

"음악평론가와 가장 가까운 전공이 사회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을 선택했고, 음악평론을 쓰고 싶어 신문기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그 후부터는 방송, 저서 등을 통해 음악평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중음악 평론가로 28년 동안 활동하는 임진모. 임진모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것은 당연. 아무리 인기가 높은 히트곡이라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임진모의 무시무시한 저력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임진모와 같은 대중음악 평론가는 평론 자체가 바로 대중예술이 될 수 있다. 임진모는 대중음악 평론을 하고 있지만, 임진모가 하는 대중음악평론은 오락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 말은 임진모의 대중음악평론이 절묘하게 대중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개성을 유지해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중은 금방 싫증을 낸다. 그런데도 임진모는 절묘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음악평론을 계속하고 있다. 30년 인기를 지속하는 임진모를 보면, 임진모가 흘린 엄청난 양의 땀을 얼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늘 본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결같은 주제여야 한다."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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