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진 경인총국장 |
15일부터 17일 밤과 새벽 시간에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서는 요란한 총성이 이어졌다. 엽사와 군인·공무원이 포획팀을 이뤄 민통선 내에서 총기를 사용해 야생 멧돼지 포획에 나선 것이었다. 포획팀은 이틀간 야생 멧돼지 23마리를 사살했다. 참가한 한 엽사는 “야생 멧돼지의 10분의 1도 못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야생 멧돼지 총기 포획은 일단 종료된다.
북한은 지난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유력한 감염 매개체로는 야생 멧돼지가 꼽혔다. 이때부터 북한 야생 멧돼지 바이러스의 국내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파주 민통선 주민들과 엽사들은 민통선 야생 멧돼지에 대한 총기 포획을 촉구했다. 하지만 관계 당국은 민통선 항공 방제와 방역만 했을 뿐 총기 포획은 머뭇거려 왔다.
이러는 사이 지난달 17일 파주 돼지 농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ASF가 확진됐고, 지난 9일까지 파주·연천·강화·김포 등 접경지역 총 14개 농장으로 퍼져 나갔다. 이 사이 지난 2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에 이어 16일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17일 파주시와 연천군 민통선에서 죽은 채 발견된 멧돼지에서 ASF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로써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멧돼지는 9마리로 늘었다. 민통선 안에서 발견된 개체 수는 7마리다. 나머지 2마리는 DMZ와 민통선 남쪽에서 각각 발견됐다. 다급해진 당국은 ASF 발생 한 달이 다된 시점에서 한시적으로 민통선 야생 멧돼지 총기 포획에 나섰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허탈해한다. 북한과의 공동 방역과 대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최근 삐걱대는 남북 관계에 비춰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감염 경로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감염 매개체로 지목되는 북한과 접한 민통선 지역 야생 멧돼지에 대한 선제적 소탕을 늦춘 것에 불만이다. “민통선 멧돼지 살리려고 그 많은 애꿎은 집돼지는 다 죽였느냐”는 볼멘소리가 일리 있다. 생계가 걸린 ASF 확산 차단이 북한 눈치 볼 일인가.
전익진 경인총국장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