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산업1팀 차장 |
휴대전화 카메라가 전문가용 카메라를 능가하는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구닥다리 필름 카메라를 이길 수 없는 게 있다. 관용도(寬容度)다. 영어로는 래티튜드(latitude)인데, 통상 위도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선택이나 행동방식에서 자유의 범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진에서 관용도는 노출(exposure)을 잘못 맞췄을 때 현상 과정에서 적정노출로 보정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다소 어둡거나 밝더라도 현상 과정에서 보정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은 다이내믹 레인지에서도 아직 필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 사이를 세분해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계조(階調)라고도 하는데, 디지털 사진에선 아주 밝거나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쉽지 않다.
사진의 적정노출에 대한 이론은 안셀 애덤스(1902~1984)가 창안한 ‘존 시스템(zone system)’에서 확립됐다. 애덤스는 피사체를 반사율이 0%인 순수한 검은색에서부터 100%인 흰색까지 10개의 존으로 나눠 분석했다. 18%의 반사율을 갖는 ‘존5’를 찾아 측광하면 사진 전체의 적정 노출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존5’는 ‘18% 그레이(grey·회색)’라 불린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아날로그의 세계다. 어둠 속에도 계조는 분명히 구분되며, 설령 판단이 틀렸더라도 관용도가 높다면 보정할 수 있다. 상식적이고 납득할만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18% 그레이’가 존재한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흑백의 대비는 더욱 강렬해졌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세상은 드라마틱하지만 보정하기 어렵다. 흑과 백 사이엔 회색이 있고, 아군과 적군 사이에는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이들이 존재한다. 세계관에도 ‘18% 그레이’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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