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깎고 또 깎아주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지역가입자 보험료 줄어도
농어촌 거주자·농어민 할인 등 20여개 그대로
중복경감만 80만세대···소득·재산기준 강화하고
고가 자동차 보유자 피부양자서 제외 검토해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를 가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234만2,371명(7월 말 기준) 가운데 자동차에도 건보료가 부과되는 지역가입자였다면 ‘자동차분 건보료’를 내야 하는 사람이 1만5,493명이나 됐다. 1만3,046명은 수입차 보유자였다. 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녀 A(28)씨는 3억원이 넘는 페라리 보유자였다. 지역가입자는 사용 연식이 9년 미만이거나 배기량이 1,600㏄를 넘고 차량 평가액이 4,000만원 이상인 경우 자동차분 건보료가 부과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 대한 건보료 부과체계가 달라서 생기는 구멍의 수혜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구멍이 훨씬 큰 것은 20여개 항목에 이르는 건보료 경감제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을 통해 다양한 건보료 경감제도를 운영한다. 군 단위 농어촌 거주 주민에게 22%, 농어업인에게 28%를 깎아주고 농어촌 거주 농어업인이면 둘을 합쳐 50%를 경감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깎아주는 건보료가 연간 1조원, 수혜자가 중복 경감자만 80만 세대나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복지부는 지난해 7월 1단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시행하면서 중복 경감 개선 등은 뒤로 미뤘다. 지역가입자 550만세대의 건보료가 줄었지만 농어촌 거주자 등 175만세대는 기존 경감제도를 통해 월 238억원의 건보료 경감 혜택을 받았다. 군 지역에 사는 B씨의 경우 지난해 6월 명목상의 건보료는 약 39만원이었지만 농어촌주민 경감 22%를 받아 30만여원만 냈다. 새 건보료 부과체계가 시행되자 그의 7월 건보료는 26만여원으로 또 줄었다. 군 지역에 사는 건보 가입자 141만세대의 월평균 경감액은 1만5,400원이다.
이와 별개로 농어업인에게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건보료의 28%를 깎아준다. 31만세대가 월평균 4만원의 경감 혜택을 받는다. 소득이 4,200만원, 재산이 18억원 이상 되지 않거나 재산이 없는 경우 연소득이 8,830만원을 넘지 않으면 수혜 대상이다.
정부는 1978년 섬·벽지 주민 건보료 50% 경감제도를 도입한 후 취약세대, 휴직자, 군인, 노인,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자 등으로 대상자를 늘려왔다. 건보료 경감 대상에는 소년소녀가장 등 생활이 어려운 세대도 있다. 반면 상당한 소득·재산이 있어도 농어촌·섬·벽지 거주자나 65세·70세 이상 노인 세대라는 이유로 경감을 받는 세대, 특히 중복 경감 혜택자도 많다.
연간 건보료 경감 규모는 1조648억원으로 집계됐다. 연간 총 보험료 수입의 2% 수준이다. 항목별 경감 규모는 농어촌(2,613억원), 취약세대(1,807억원), 섬·벽지(118억원), 재난(1억원) 순이다. 직장가입자가 대상인 경우는 일자리 경감(2,928억원), 임의계속가입 경감(1,217억원), 육아휴직자 경감(624억원), 군인 경감(570억원), 국외근무자 경감(420억원), 휴직자 경감(275억원), 섬·벽지 경감(75억원) 순이다. 취약세대 경감 중 규모가 가장 큰 항목은 65세 이상 노인 세대 경감(783억원)이다.
문제가 커지자 건강보험당국도 농어촌 거주자 등에 대한 건보료 경감 혜택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건강보험공단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통해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따른 보험료 경감제도의 영향 분석 및 개선방안’을 제출받고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2022년 7월 2차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시행 전까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보험료 경감제도는 취약계층의 보험료 미납을 예방해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면 전체 보험료 수입을 감소시켜 다른 가입자에게 보험료 부담을 추가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전체 보험료 경감제도의 목적 및 원칙 등에 대한 법적 정의가 부재한 상황”이라며 “보험료 경감제도의 목적 및 원칙에 대한 이론적·법적·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연구팀은 이어 개선 우선순위로 농어촌 경감과 취약세대 경감을 꼽았다. 개선방안으로는 농어촌 경감의 경우 소득·재산기준 도입, 취약세대 경감의 경우 연령·성별 기준을 통합·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또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 부담이 완화된 경감 항목에 대한 경감률 인하·폐지 △경감제도·항목에 대한 3년 주기 재평가 △향후 부과체계 개편방향과 연계한 경감제도 재설정도 건의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수십년에 걸쳐 사회적 여건이 달라지고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줄었는데도 정합성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잘못”이라며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연계해 경감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단계 부과체계 개편 이후 저소득 지역가입자 568만세대의 건보료가 월평균 2만1,000원 줄어들고 소득 상위 1∼2%의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 등 고액 재산가 80만세대의 보험료가 월평균 6만6,000원 올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편 ‘무임승차’하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계속 증가하다 건보당국이 자격요건을 강화하면서 최근 들어 줄어들고 있다. 2015년 2,046만여명까지 늘었다가 2016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지난해 1,951만명으로 2,000만명선 아래로 내려갔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는 건강보험 전체 가입자(외국인과 재외국민 122만명 포함) 5,137만명 중 37.9%인 1,946만명이 피부양자다. 건보료를 내는 직장가입자 1,799만명(35.0%), 지역가입자 1,392만명(27.1%)보다 많다. 직장가입자의 자녀 등 가족이 대부분이다. 형제자매의 경우 1단계 부과체계 개편으로 원칙적으로 피부양자가 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토지·주택뿐 아니라 전월세·자동차에 모두 건보료를 부과하는 지역가입자와 달리 피부양자의 소득·재산을 산정할 때 수입차 등 고가의 자동차, 전월세는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 의원은 “수억원짜리 수입차를 보유하고도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건강보험 부과체계가 보다 공평해질 수 있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2022년 7월부터 2단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시행한다. 피부양자 인정요건 등도 더 까다로워진다. 금융소득과 연금소득, 근로·기타소득 등 연간 합산소득이 3,400만원(1단계), 2,000만원(2단계)을 넘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부모는 지역가입자로 전환해야 한다. 합산소득 3,400만원은 2인 가구 중위소득의 100%로 생활비 등 필요경비 비율 90%를 고려하면 실제 소득금액은 3억4,000만원가량이다. 재산도 과표 5억4,000만원(1단계), 3억6,000만원(2단계)이 넘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이전까지는 피부양자 인정을 위한 소득·재산 기준이 느슨해 연소득이 1억2,000만원(총수입 12억원), 재산이 과표 기준 9억원(시가 약 18억원)에 달해도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부는 또 2020년부터 연 2,000만원 이하 분리과세 금융소득에도 건보료를 부과한다. 연 2,000만원 이하 주택임대소득에 대해서는 2020년 11월부터 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고 연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이자·배당)에 대해서도 보험료 부과를 추진한다. 지금까지는 종합소득에 포함되는 임대·금융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매겨왔다. 연이율 2%를 가정할 때 금융소득 2,000만원은 10억원 수준의 정기예금을 보유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다.
건강보험공단의 ‘2019~2023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의 자산은 2019년 약 31조원에서 2023년 29조여원으로 감소한다. 현금과 금융자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부채는 13조여원에서 약 17조원으로 늘어난다. 자산이 줄고 부채가 늘면서 부채비율도 2019년 74%에서 20021년 102%, 2023년 133%로 증가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주된 이유다. jaelim@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